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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이야기를 하는데, 제 머리는 못 깎는 땡중 소리를 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열변을 토하며 친구에게 상담을 해주던 내가, 정작 자기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만한게, 불과 며칠 사이에 나는 이것이 무슨 요란인가 싶다. 그래서 진지하게 나 자신에 대해서 분석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중의 일부는 이곳에 쓰일 것이고, 또 그중의 일부는 공개되지 못할 것이다. 창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분석할 것이다.
처음 분석할 것은, 세미나에 대한 입장이다. 그것이 가장 최근에 주어진 물음이기 때문이다. 자본론 세미나를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버스를 기다리며, 자본론 세미나 간사를 맡으신 ㄹㅎㅅ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그 세미나(ㄱ대학에서 하는 고전강독 세미나)를 왜 하느냐고 말이다.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버스가 와서 자리를 떴다. 그러니, 말하자면 정말 가장 가까운 시점에 내게 주어진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질문을 먼저 다룰 것이다.
내가 현재 참여하고 있는 세미나는 총 4개이다. 하나는 학교 학회에서 진행되는 세미나, 그리고 그 간사 세미나, 자본론 세미나, ㄱ대학에서의 세미나까지. 이들 세미나를 내가 왜 하는지 생각해보면, 사실 나의 어떠한 입장은 무엇인지, 그리고 나의 진로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두가지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것은 내가 자본론 세미나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혼자 고민해보았던 질문, 그리고 자본론 1권 세미나가 끝나고 나서, ㅈㅅㅇ ㄴㄷ에 투고하였던, 세미나 후기에서의 질문과 사실 같은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마르크스에 대한 나의 입장을 피할 수 없는데,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문득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계급의식이 뚜렷하지 않구나, 하는 것. 나는 스스로 무슨 주의자라고 참칭하지 않듯이, 나는 노동자 계급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내가 (예비)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내가 가끔씩 민중가요를 듣는다고해서, 가끔씩 집회에 나간다고 해서, 내가 이른바 진보적 언론을 본다고 해서, 내가 사회과학 동아리를 운영한다고 해서, 내가 자본론을 읽으며 마르크스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나서 생각을 하니,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는 변혁을 추구한다기 보다, 세계를 정확하게 독해하고 싶었다. 포이어바흐의 11번째 테제는 유명한 일화이다. 그동안의 철학자들은 세계를 이해하였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라는 구절에 비추어 본다면, 나는 그 반대였던 것이고, 마르크스가 투쟁을 벌이던 관념론자들의 행태인 것이다. (나는 이 상황에 대해서 매우 중립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라고 하는 유령은 내게 여전히 매우 중요한 준거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계급의식이라는 혁명적 의식을 담보할 수 없었던 것이다.
ㄹㅎㅅ 선생님께 케인즈의 일반이론을 읽는 ㄱ 대학에서의 세미나를 참석하는 이유를, 말씀드리다가 말았다. 버스가 도착해서도 있었지만, 사실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케인즈에 대해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었고, ㄱ대학 교수님들, 박사님들과 인맥을 쌓는 것이 내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었을 것 같았고, 이론적 학문적 입장에서는, 내게 마르크스는 유일한 준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는 변혁을 위해 자본론을 읽었던 것이 아니었듯이, 마찬가지 이유로 케인즈를 읽는 것이고, 때문에 자본론을 읽는 이유와 케인즈를 읽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언제인가 이론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나 나름의 어줍잖은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글에서, 이론은 사회적으로 유용해야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 구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쓴 적이 있다. 나는 아직도 그 관념을 가지고 있다. 나 자신의 구원을 주지 못하는 이론은 무용하다. 따라서 말하자면, 마르크스든 케인즈든 그것이 나를 구원시키길 바라는 것이지, 주체가 죽고서 단지 혁명에 복무하는 이론은 내게 필요하지 않다. 나는 그것은 (잘 모르고 말하는 것이기에 반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스탈린주의이고, 경제주의이고, 수동혁명이라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마르크스가 민중을 구원하려는 시도를 내재적, 외재적으로 해냈다는 것에는 무한히 동의하지만, 그것이 나를 구원시켜 줄 것이라고 믿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