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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9일]
한대수 - 욕망 (한국, 2006)
01. 욕망
02. 바다의 왕국
03. 정사
04. 바부시카
05. 먼구름
06. 지렁이
07. 갈망
08. 아마게돈
09. 바닷가에
10. When I Was A Child
11. Always
12. 대통령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더니, 언제인가부터 우리의 음악감상 환경은 많이 바뀌었다. 고공 주가를 달리던 음악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뚝 떨어져 프로그램을 폐지하지도 유지하기도 난감한 방송사의 골치덩어리가 되었다. 대신 종전에는 음악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가수들이 지상파와 공중파를 가리지 않고 각 방송 오락프로를 활개하고 있다. 음반산업은 추락하였고 대신에 디지털음원산업은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음악은 산업과 한통속이 되어 마케팅을 중심으로 그 세를 과시하고 있다. ─ 소녀시대의 Chocolate Love, 애프터스쿨의 아몰레드, 클래지콰이의 Wizard Of OZ, 빅뱅의 롤리팝을 보라. 이것들은 대중가요인가, 아니면 마케팅을 위해 탄생한 CM송인가. ─
사람들의 손에는 CD 플레이어가 아니라, MP3 플레이어가 들려있다. 심지어 MP3 플레이어 조차도 아니라, 소녀시대가 광고하는, 빅뱅이 광고하는 핸드폰만 달랑 들려있다. 음악은 LP나 CD 혹은 카세트 따위의 음반형태가 아니라, 낱개의 디지털 음원의 형태로만 존재한다. LP든 CD든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되팔아버리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디지털 음원은 버리는 것을 더욱 더 손쉽게 만들어주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삭제해버리면 그만이다. 심지어 되파는 것 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순간 그것은 쓰레기가 된다. 한푼의 값어치조차도 구걸하지 못한다. LP나 CD 등은 주인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몇푼의 푼돈을 구걸할 수라도 있다. 하지만 디지털 음원은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순간 쓰레기가 되고, 신곡이 발표되는 순간 이전 곡은 쓰레기되고, 익숙하지 않고 낯설고 티비에 나오지 않으면 쓰레기가 된다.
자신이 아니면 모든 것을 쓰레기로 환원하는 상황은 오히려 그 자신까지도 쓰레기로 환원해버리고 만다. 모든 것이 쓰레기인 세상에서, 자신의 것조차 그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음악은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해버렸으며, 몇번 몸을 흔들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 영상을 볼 수 있는 상황이라면 눈요기를 하고 ─ 몇번 반복되는 일련의 행위들이 끝나면, 그것의 사명은 다한 것이다. 곧 새로운 신곡이 발표될 것이고, 곧 새로운 그룹이 등장할 것이고, 더 이상 그 몇개월이 지난, 혹은 몇년이 지난, ─ 때로는 몇십년이 지난, ─ 그런 낡은 것들은 필요하지 않다. 더 이상 존재의 가치는 없다. 그저 쓰레기일 뿐이다. 수 없이 반복되는 음악들은 자신이 복제품임을 스스럼 없이 고백하는 것이자, 곧 버려질 미래에 대한 환영이다.
음악의 본질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라는 말은 어쩌면 옳은 것이다. 하지만 그 뿐이다. 오늘날 누구도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 음악은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만족하지 못하는 소유이며, 부추김 당하는 불만족이다. 무소유가 아니라, 불만족의 충동인 것이다. 음악은 소유라는 봉건적 양식을 떠나서 소비라는 현대적 부조리의 양식으로 모양새를 바뀌었을 뿐이다. 부조리가 현대화되었다고 한들, 무엇이 좋아진다는 것인가. 음반형태라는 것이 유일한 정답이 아님을 순순히 고백한다. 음반의 미학 조차도 당시 음반산업의 하부구조가 만들어낸 상부구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음악은 음악을 폐기하려들고 있다. 나는 지금 상황주의자들의 반예술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일상의 예술이 아니라, 썪은 시체를 소비하는 것이다.
내가 음반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사실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나는 한번 음반을 구매하기 시작하면 돈을 무척 많이 쓰게 될 것을 염려해서 음반 모으는 것을 애당초 시작하려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한달에 한장씩만 사는 것으로 규칙을 정하고서야 음반을 구매할 수가 있었는데, 그 당시 처음으로 산 음반은 바로 한대수의 ‘욕망’이었다. ─ 내가 처음으로 산 음반이 LP형태가 아니라 CD형태였다는 점은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운 점이다. ─ 포크의 거장, 한대수의 최근작 중의 하나로, 2006년에 발매된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음악하는 것이 어렵다는 거장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거장이 등장하지 않는 사회를 본다. 사람들의 뇌리 속에 거장의 모습은 잊혀진 것만 같다.
『욕망』에서 좋아하는 트랙은 물론 여러곡이 있지만, 나는 10번트랙의 ‘When I Was A Child’를 생각한다. 그는 이곡에서 어린시절의 외로움을 떠올리는데, 이상하게도 오늘 나는 이 곡에서 Don Mclean을 떠올린다. Don Mclean의 ‘American Pie’가 떠오른다. Don Mclean은 ‘American Pie’에서 포크가수로 유명한 Buddy Holly를 추모하며 자신의 젊은날을 회상한다. 음악의 시작, 그는 아주 먼 옛날, 음악은 자신을 웃게 만들고, 사람들을 춤추게 만들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어느날 문득 Buddy Holly가 죽고, 그는 그날을 ‘음악이 죽은 날’이라고 선언한다. 음악이 죽고, Beatles와 같은 광대가 판을 치는 사회를 한탄한다. ─ Beatles에 대한 부정은 나의 의견이 아니라, Don Mclean의 의견이다. ─
한대수의 ‘When I Was A Child’은 어린시절의 좋은날을 회상하는 곡이 아니라, 어린시절의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곡이다. 그리고 내가 이곡을 들으며 Don Mclean을 떠올리는 것은 무척이나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처럼 오래 전 살아있는 음악을 꿈꿀 수는 없다. 음악은 풍요의 길을 갈 수 있을까.
한대수 - 욕망 (한국, 2006)
01. 욕망
02. 바다의 왕국
03. 정사
04. 바부시카
05. 먼구름
06. 지렁이
07. 갈망
08. 아마게돈
09. 바닷가에
10. When I Was A Child
11. Always
12.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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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더니, 언제인가부터 우리의 음악감상 환경은 많이 바뀌었다. 고공 주가를 달리던 음악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뚝 떨어져 프로그램을 폐지하지도 유지하기도 난감한 방송사의 골치덩어리가 되었다. 대신 종전에는 음악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가수들이 지상파와 공중파를 가리지 않고 각 방송 오락프로를 활개하고 있다. 음반산업은 추락하였고 대신에 디지털음원산업은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음악은 산업과 한통속이 되어 마케팅을 중심으로 그 세를 과시하고 있다. ─ 소녀시대의 Chocolate Love, 애프터스쿨의 아몰레드, 클래지콰이의 Wizard Of OZ, 빅뱅의 롤리팝을 보라. 이것들은 대중가요인가, 아니면 마케팅을 위해 탄생한 CM송인가. ─
사람들의 손에는 CD 플레이어가 아니라, MP3 플레이어가 들려있다. 심지어 MP3 플레이어 조차도 아니라, 소녀시대가 광고하는, 빅뱅이 광고하는 핸드폰만 달랑 들려있다. 음악은 LP나 CD 혹은 카세트 따위의 음반형태가 아니라, 낱개의 디지털 음원의 형태로만 존재한다. LP든 CD든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되팔아버리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디지털 음원은 버리는 것을 더욱 더 손쉽게 만들어주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삭제해버리면 그만이다. 심지어 되파는 것 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순간 그것은 쓰레기가 된다. 한푼의 값어치조차도 구걸하지 못한다. LP나 CD 등은 주인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몇푼의 푼돈을 구걸할 수라도 있다. 하지만 디지털 음원은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순간 쓰레기가 되고, 신곡이 발표되는 순간 이전 곡은 쓰레기되고, 익숙하지 않고 낯설고 티비에 나오지 않으면 쓰레기가 된다.
자신이 아니면 모든 것을 쓰레기로 환원하는 상황은 오히려 그 자신까지도 쓰레기로 환원해버리고 만다. 모든 것이 쓰레기인 세상에서, 자신의 것조차 그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음악은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해버렸으며, 몇번 몸을 흔들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 영상을 볼 수 있는 상황이라면 눈요기를 하고 ─ 몇번 반복되는 일련의 행위들이 끝나면, 그것의 사명은 다한 것이다. 곧 새로운 신곡이 발표될 것이고, 곧 새로운 그룹이 등장할 것이고, 더 이상 그 몇개월이 지난, 혹은 몇년이 지난, ─ 때로는 몇십년이 지난, ─ 그런 낡은 것들은 필요하지 않다. 더 이상 존재의 가치는 없다. 그저 쓰레기일 뿐이다. 수 없이 반복되는 음악들은 자신이 복제품임을 스스럼 없이 고백하는 것이자, 곧 버려질 미래에 대한 환영이다.
음악의 본질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라는 말은 어쩌면 옳은 것이다. 하지만 그 뿐이다. 오늘날 누구도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 음악은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만족하지 못하는 소유이며, 부추김 당하는 불만족이다. 무소유가 아니라, 불만족의 충동인 것이다. 음악은 소유라는 봉건적 양식을 떠나서 소비라는 현대적 부조리의 양식으로 모양새를 바뀌었을 뿐이다. 부조리가 현대화되었다고 한들, 무엇이 좋아진다는 것인가. 음반형태라는 것이 유일한 정답이 아님을 순순히 고백한다. 음반의 미학 조차도 당시 음반산업의 하부구조가 만들어낸 상부구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음악은 음악을 폐기하려들고 있다. 나는 지금 상황주의자들의 반예술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일상의 예술이 아니라, 썪은 시체를 소비하는 것이다.
내가 음반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사실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나는 한번 음반을 구매하기 시작하면 돈을 무척 많이 쓰게 될 것을 염려해서 음반 모으는 것을 애당초 시작하려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한달에 한장씩만 사는 것으로 규칙을 정하고서야 음반을 구매할 수가 있었는데, 그 당시 처음으로 산 음반은 바로 한대수의 ‘욕망’이었다. ─ 내가 처음으로 산 음반이 LP형태가 아니라 CD형태였다는 점은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운 점이다. ─ 포크의 거장, 한대수의 최근작 중의 하나로, 2006년에 발매된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음악하는 것이 어렵다는 거장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거장이 등장하지 않는 사회를 본다. 사람들의 뇌리 속에 거장의 모습은 잊혀진 것만 같다.
『욕망』에서 좋아하는 트랙은 물론 여러곡이 있지만, 나는 10번트랙의 ‘When I Was A Child’를 생각한다. 그는 이곡에서 어린시절의 외로움을 떠올리는데, 이상하게도 오늘 나는 이 곡에서 Don Mclean을 떠올린다. Don Mclean의 ‘American Pie’가 떠오른다. Don Mclean은 ‘American Pie’에서 포크가수로 유명한 Buddy Holly를 추모하며 자신의 젊은날을 회상한다. 음악의 시작, 그는 아주 먼 옛날, 음악은 자신을 웃게 만들고, 사람들을 춤추게 만들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어느날 문득 Buddy Holly가 죽고, 그는 그날을 ‘음악이 죽은 날’이라고 선언한다. 음악이 죽고, Beatles와 같은 광대가 판을 치는 사회를 한탄한다. ─ Beatles에 대한 부정은 나의 의견이 아니라, Don Mclean의 의견이다. ─
한대수의 ‘When I Was A Child’은 어린시절의 좋은날을 회상하는 곡이 아니라, 어린시절의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곡이다. 그리고 내가 이곡을 들으며 Don Mclean을 떠올리는 것은 무척이나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처럼 오래 전 살아있는 음악을 꿈꿀 수는 없다. 음악은 풍요의 길을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