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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2010년 4월 7일]
Surfer Blood - Astro Coast
(US, 2010)
1. "Floating Vibes"
2. "Swim"
3. "Take It Easy" [듣기]
4. "Harmonix"
5. "Neighbour Riffs"
6. "Twin Peaks"
7. "Fast Jabroni"
8. "Slow Jabroni"
9. "Anchorage"
10. "Catholic Pagans"
가요 애호가들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요에 대해서 비판적 혹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마 나의 말을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흔히 가요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티비에 나오면 장르가 사라진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척 생소하게 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장르가 사라진다니, 도대체 그것이 무슨 뜻인가. 하지만, 분명히 장르는 사라진다. 나는 이것에 매우 동의하며, 나와 같은 사람은 무척 많다.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 묻는다면, 대개 대답은 같다. ‘나는 이것저것 다 좋아해.’, ‘나는 잡식성이야.’ 누구나 좋아하는 가수 한둘을 가지고 있듯, 누구나 좋아하는 장르 하나 정도씩은 있을법한데, 한결같이 편견없이 다양하게 듣는, 너그러운 사람들이다. 왜 그럴까, 좋아하는 장르가 없는 만큼, 음악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뿐일까. 사람들이 음악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회의 한편에는 장르가 사라진 음악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뿐만아니라, 음악에 열정적이라고 말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질문자체가 우스운 것이지만, 그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인지, 노래방을 좋아하는 것인지는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장르가 사라진 음악은 다름아니라, 바로 가요다. 가요는 마치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렸다. 획일화된 음악은 장르를 삭제시키고, 단지 가요라는 이름으로 모든 음악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우리의 언어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실제적으로 우리 대중음악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다양하게 음악을 듣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그 가요만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단지 다양하게 듣는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좋아한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훨씬 더 다양한 음악을 듣게 되는 역설을 만들어 낸다. 오히려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음악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서 더 다양한 음악을 듣도록 한다.
물론 이 문제가 음악산업 규모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말은 명백히 옳은 말이다. 한국의 음악산업 규모를 미국의 것과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으로 이 문제의 모든 것을 치환할 수는 없다. 더구나 우리사회의 총체적인 경제규모를 본다면, 너무나도 비루한 변명이다. 더구나 폐쇄적인 우리사회는 음악수입에도 인색하여 도무지 풍요로운 문화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실, 한류에 대한 집착은 ─ 혹은 선전은 ─ 허황되고 불가능한 이야기다. 동남아와 남미 등지에서 한국문화가 수출되는 것은 분명하게 말하자면, 문화의 수출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나쁜 곳으로, 경제적 환상을 수출하는 것일 뿐이다.
─ 미국문화가 다른 나라로 수출되는 것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화의 유출입은 분명히 경제규모와 필연적이다. 다만, 미국은 풍부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풍부한 대중문화를 양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중문화라는 것 자체가, 소비문화의 포장된 형태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산물로써 모든 은폐도구로 자리한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대중문화에 대한 이 모든 근본적 물음은 논외로 해둔다. ─
이 모든 상황은 국제적인 상황인 동시에,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문제들이 지니고 있는 지극히 한국적인 성격이 있다. 그리고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서울 공화국이다. 말은 태어나면 제주로 가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가야한다는 옛말은 망령처럼 우리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모든 것이 서울로 집중되는 우리사회는 사람도, 부도, 능력도, 전력도, 그리고 문화와 음악까지도 흡입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규모에 비해 비루한 우리사회의 문화산업 ─ 편의상 산업이라고 참칭한다. ─ 은 서울공화국과 고사하는 지방의 또 다른 단편일 뿐이다. 또한, 유행마저도 획일적이고 통일적인 상황,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는 것, 이미지의 과잉과, 은폐되는 계급, 이 모든 우리사회의 문제가 결코 개별의 상황이 아닌 것이다.
아니다. 사실 서울공화국 조차도 이 문제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편일 뿐이다. 티비에 나오면 장르가 사라진다는 말에서 티비가 서울의 다른 이름이듯, 서울로 표현된 공간은 모든 것을 흡입하는 하나의 추상적 공간일 뿐이다. 추상적 공간의 서울이 구체적인 형태의 서울로 나타났을 뿐인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획일주의를 이끄는 분명한 주체가 있다. 나는 굳이 이것을 모더니즘이나, 신자유주의 같은 말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분명하고 구체적인 주체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파편화된 표상이 시공간을 통일한다. 높은 밀도의 공간은 주변부를 흡입한다.
그리하여 장르의 실종이 있다. 티비를 켜면, 록도 있고, 랩도 있고, 댄스도 있지만, 장르는 실종되었다. 사람들에게 미국에는 동부힙합과 서부힙합, 남부힙합은 서로 다른 장르라는 것을, 재즈에서 서부의 웨스트코스트와 동부의 쿨 재즈는 서로 극명히 갈라진다는 것을, 록에서 미국의 캘리포니아 사운드와 시애틀 사운드, 영국의 맨체스터 사운드와 리버풀 사운드는 서로서로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언제나 난감하고 고역이 된다. 모든 것이 서울로 귀결되는 우리사회에서 지역의 이름을 내걸고 탄생하는 음악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생소한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사회의, ─ 우리사회 젊은이의 ─ 고약한 집결지인 싸이월드, 지금의 네이트닷컴에는 음악 카테고리에서 ‘록’은 우습게도, ‘하드’, ‘소프트’, ‘올드’, ‘인디’라는 말도안되는 구분이 지어있다. 티비에 나오는 모든 록은 그저 모던록이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불려진다. ‘Surfer Blood’를 소개하고 싶다. 올해 초 첫번째 풀앨범을 낸 신예로, 서프 사운드 (그러니까 캘리포니아 사운드)에 시원한 노이즈가 입혀있다. 그래서 데뷔앨범의 이름도, ‘Astro Coast’. 2008년 Vampire Weekend, 2009년 Pains Of Being Pure At Heart, 그리고 2010년 나는 유망주로 이들을 지목한다. Surfer Blood, 우리사회에서 이들의 음악은 무어라고 이름 불려질까. 하지만, 이들은 느긋한 캘리포니아 해변의 언어로 대답한다. “Take it easy.”
Surfer Blood - Astro Coast
1. "Floating Vibes"
2. "Swim"
3. "Take It Easy" [듣기]
4. "Harmonix"
5. "Neighbour Riffs"
6. "Twin Peaks"
7. "Fast Jabroni"
8. "Slow Jabroni"
9. "Anchorage"
10. "Catholic Pag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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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애호가들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요에 대해서 비판적 혹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마 나의 말을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흔히 가요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티비에 나오면 장르가 사라진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척 생소하게 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장르가 사라진다니, 도대체 그것이 무슨 뜻인가. 하지만, 분명히 장르는 사라진다. 나는 이것에 매우 동의하며, 나와 같은 사람은 무척 많다.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 묻는다면, 대개 대답은 같다. ‘나는 이것저것 다 좋아해.’, ‘나는 잡식성이야.’ 누구나 좋아하는 가수 한둘을 가지고 있듯, 누구나 좋아하는 장르 하나 정도씩은 있을법한데, 한결같이 편견없이 다양하게 듣는, 너그러운 사람들이다. 왜 그럴까, 좋아하는 장르가 없는 만큼, 음악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뿐일까. 사람들이 음악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회의 한편에는 장르가 사라진 음악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뿐만아니라, 음악에 열정적이라고 말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질문자체가 우스운 것이지만, 그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인지, 노래방을 좋아하는 것인지는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장르가 사라진 음악은 다름아니라, 바로 가요다. 가요는 마치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렸다. 획일화된 음악은 장르를 삭제시키고, 단지 가요라는 이름으로 모든 음악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우리의 언어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실제적으로 우리 대중음악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다양하게 음악을 듣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그 가요만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단지 다양하게 듣는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좋아한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훨씬 더 다양한 음악을 듣게 되는 역설을 만들어 낸다. 오히려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음악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서 더 다양한 음악을 듣도록 한다.
물론 이 문제가 음악산업 규모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말은 명백히 옳은 말이다. 한국의 음악산업 규모를 미국의 것과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으로 이 문제의 모든 것을 치환할 수는 없다. 더구나 우리사회의 총체적인 경제규모를 본다면, 너무나도 비루한 변명이다. 더구나 폐쇄적인 우리사회는 음악수입에도 인색하여 도무지 풍요로운 문화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실, 한류에 대한 집착은 ─ 혹은 선전은 ─ 허황되고 불가능한 이야기다. 동남아와 남미 등지에서 한국문화가 수출되는 것은 분명하게 말하자면, 문화의 수출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나쁜 곳으로, 경제적 환상을 수출하는 것일 뿐이다.
─ 미국문화가 다른 나라로 수출되는 것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화의 유출입은 분명히 경제규모와 필연적이다. 다만, 미국은 풍부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풍부한 대중문화를 양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중문화라는 것 자체가, 소비문화의 포장된 형태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산물로써 모든 은폐도구로 자리한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대중문화에 대한 이 모든 근본적 물음은 논외로 해둔다. ─
이 모든 상황은 국제적인 상황인 동시에,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문제들이 지니고 있는 지극히 한국적인 성격이 있다. 그리고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서울 공화국이다. 말은 태어나면 제주로 가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가야한다는 옛말은 망령처럼 우리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모든 것이 서울로 집중되는 우리사회는 사람도, 부도, 능력도, 전력도, 그리고 문화와 음악까지도 흡입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규모에 비해 비루한 우리사회의 문화산업 ─ 편의상 산업이라고 참칭한다. ─ 은 서울공화국과 고사하는 지방의 또 다른 단편일 뿐이다. 또한, 유행마저도 획일적이고 통일적인 상황,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는 것, 이미지의 과잉과, 은폐되는 계급, 이 모든 우리사회의 문제가 결코 개별의 상황이 아닌 것이다.
아니다. 사실 서울공화국 조차도 이 문제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편일 뿐이다. 티비에 나오면 장르가 사라진다는 말에서 티비가 서울의 다른 이름이듯, 서울로 표현된 공간은 모든 것을 흡입하는 하나의 추상적 공간일 뿐이다. 추상적 공간의 서울이 구체적인 형태의 서울로 나타났을 뿐인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획일주의를 이끄는 분명한 주체가 있다. 나는 굳이 이것을 모더니즘이나, 신자유주의 같은 말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분명하고 구체적인 주체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파편화된 표상이 시공간을 통일한다. 높은 밀도의 공간은 주변부를 흡입한다.
그리하여 장르의 실종이 있다. 티비를 켜면, 록도 있고, 랩도 있고, 댄스도 있지만, 장르는 실종되었다. 사람들에게 미국에는 동부힙합과 서부힙합, 남부힙합은 서로 다른 장르라는 것을, 재즈에서 서부의 웨스트코스트와 동부의 쿨 재즈는 서로 극명히 갈라진다는 것을, 록에서 미국의 캘리포니아 사운드와 시애틀 사운드, 영국의 맨체스터 사운드와 리버풀 사운드는 서로서로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언제나 난감하고 고역이 된다. 모든 것이 서울로 귀결되는 우리사회에서 지역의 이름을 내걸고 탄생하는 음악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생소한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사회의, ─ 우리사회 젊은이의 ─ 고약한 집결지인 싸이월드, 지금의 네이트닷컴에는 음악 카테고리에서 ‘록’은 우습게도, ‘하드’, ‘소프트’, ‘올드’, ‘인디’라는 말도안되는 구분이 지어있다. 티비에 나오는 모든 록은 그저 모던록이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불려진다. ‘Surfer Blood’를 소개하고 싶다. 올해 초 첫번째 풀앨범을 낸 신예로, 서프 사운드 (그러니까 캘리포니아 사운드)에 시원한 노이즈가 입혀있다. 그래서 데뷔앨범의 이름도, ‘Astro Coast’. 2008년 Vampire Weekend, 2009년 Pains Of Being Pure At Heart, 그리고 2010년 나는 유망주로 이들을 지목한다. Surfer Blood, 우리사회에서 이들의 음악은 무어라고 이름 불려질까. 하지만, 이들은 느긋한 캘리포니아 해변의 언어로 대답한다. “Take it ea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