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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6일]
미뤄두었던 나의 고증학을 시작하여야 할 것 같다. 아마 나의 기억에 한계가 있으므로, 많은 것을 적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은 앞으로 평생을 할 요량이니, 지금의 부족함은 충분히 만회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먼저 19살 떄의 이야기부터 시작해보도록 하자. 고등학생 때 이외수의 소설을 계기로, 소설에는 손을 끊게 되었다. 19살에 당시 이외수의 '장외인간'을 무척이나 기대를 품고서 보았었는데, 정말 쓰잘데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달이 어느 날 없어지고, 그 사실을 전 지구에 자신 혼자 뿐이라는 그 자의식 넘치는 설정이 나는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다.) 그 이후로 대학에 수시모집 전형으로 합격을 한 이후로, 책을 볼 여유가 생겼는데, 합격 전에 시간도 없는 상황에서 읽은 책이 무척이나 쓰잘데 없다고 느끼자, 비소설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친하게 알고 지내던 아이가 비문학 책을 본다는 것이 대단히 충격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아이가 읽던 책은 경제 실용서 였기에,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을 갖지는 않았다.
그리고 같은 반에 비문학 서적을 읽던 아이도 한명 있었다. 그 아이는 공부는 전혀 하지 않고 비문학 서적을 열심히 읽는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사차원'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 아이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지만, 그 상황이 대단히 불합리하다고 예전부터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는 대학을 합격한 이후로, 비소설 책을 읽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서 처음 본 책이 아마,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1, 2권이었던 것 같다. 그 책을 고른 이유는 아마도 이른바 권장도서였던 것에서 비롯한 그 책의 권위, 그리고 당시 내가 이따금 시를 썼었던 이유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책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생애 처음으로 읽었던 비소설의 그 책이 대단히 감명 깊었는지, 그 이후로도 나는 비소설, 비문학 책에 푹 빠지게 되었다.
대학 입학 전에 읽었던 책 중에, 그 이후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은 없다. 그 이후로 인터넷에서 추천받은 몇몇의 책들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보고는 했었는데, 아마 대부분 읽다 말았던 것 같다. 그중에 청소년 소설도 있었는데, 그 책도 초입부를 조금 읽다가 말았다. 대학에 입학하고부터는 대학 도서관에서 문화, 예술 코너에 있는 책들을 탐독했다. 주요 주제는 미술, 그리고 음악이었다. 미술에는 이중섭에 대한 책, 그리고 반 고흐에 대한 책을 읽었다. 특히나 반 고흐의 서한집을 묶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는 지금도 기억에 남을 만큼 한장 한장,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태양의 화가라 불리는, 반 고흐의 그 노란색이 좋았다. 아마도 그 무렵부터 나는 이미 대안적인 어떤 것들에 대해서 고민을 시작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함석헌에 대한 책을 읽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시기적으로 명확히 구분하자면, 반 고흐 이후의 일이기는 하다. 당시 교내서점에서 파본이나 쌓인 재고들을 싼 값에 팔았었는데, 그때 무엇을 살까 고민고민을 하다가, 웬일이었는지, 함석헌에 대한 책 한권을 책을 한권 샀었기 때문이었다. 송현이 쓴 '젊은 날에 만나야 할 시인 함석헌'이었다. 제목을 보건데, 아마 시인이라는 말도 내가 그 책을 사게 된 일정부분의 이유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당시의 나는 함석헌의 영향을 꽤나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음악에 대한 책이라면 당연히, 록 음악에 관련된 책들을 주로 읽었다. 대개 대중음악 입문서들이었으나, 전문서적도 있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록음악의 미학'이었다. 아도르노의 미학이론을 비판하면서 이루어 졌던 그 책을 내가 얼마만큼 이해를 하고 읽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록에 대한 철학적 이해에 있어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기억을 한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아도르노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지, 나는 전혀 몰랐다. 또 이 당시만 하여도 나는 각종 음악 잡지를 달달이 챙겨보면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존 레논에 대한 영향이었는지, 히피문화, 아나키즘 등과 같은 문화에 친화성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었다. 얄디얇은 책이었지만, 나는 그 책을 아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척이나 오랜 시간을 걸쳐서 꾸역꾸역 읽어내려갔다. 내가 그 책을 왜 읽었는가 하면, 당시 이곳저곳에서 찾아본 추천도서, 명저 리스트 등에서 베버의 그 책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였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이 무렵, 나는 이른바 도서추천, 권장도서 등의 권위에 대한 충성도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