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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3일]
일찍이 페이스북에서, 세미나에서, 등등 여러번 말한 것이지만, 나는 정말이지 경제학이 싫었다. 수학이 싫었고, 돈이라면 지긋지긋했고, 그랬기에 경제학이라면 죽어도 갈 생각이 없었다. 우리 학교는 학부제였고, 사회과학부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단지 내가 사회복지학과를 지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회복지학과랑, 사회과학부랑, 사회학과랑 정확히 무엇이 다른지, 잘 몰랐고 그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대학이나 진로에 대해서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사회과학부에 들어와서도, 경제학과는 죽어도 가지 않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오리엔테이션 날, 경제학과 과대표가 나와서 학과 홍보하는 것을 보고서, 덜컥 경제학과를 선택하기로 하였다. 그날 경제학과에는 100여명이 들어왔고, 사회학과는 단 몇명만이 들어갔다. 경제학은 그런 위상이었다. 취업이 잘 되는 곳, 나도 그 취업률이라는 말에 혹해서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닐수록 그 안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적응되지 않았던 것은 아무래도 대학 특유의 집단문화였을테지만, 동기들과도 이질감이 들었다. 그들이 꿈꾸는 것은 온통 주식, 투자, 금융, 은행, 창업, 경영, 뭐 그런 것들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학과 내에서는 모의주식투자 대회 같은 것이 열렸다. 엔엘 계열의,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하는 소학회도 있었고, 민중가요를 부르는 소학회도 있었지만, 내 관심대상은 아니었다. 나는 문화예술 비평을 하던 신생 소학회에 들어가 적당히 어울리다가 휴학을 했고, 그 소학회는 사라졌다. 문화예술 비평을 하던 곳이라고 했지만, 그곳은 문화예술 비평의 모임이었다기 보다는 학과 내에서 어울리지 못한, 혹은 소학회에 미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이 들어갔던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나는 적극적인 성격도 아니었던지라, 그 흐지부지한 모임에 적당히 어울렸을 뿐이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던 것은 음악이나 영화, 미술, 문학 같이, 문화 예술에 대한 것들이었다. 정말이다. 나는 거의 그런 것들만 관심을 가졌었다. 언젠가는 문화예술에 특화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그때 이후로도 대단히 많은 시간동안을 그랬었다. 그래서 인가, 나는 아직도 인문학에 대한 미련이 대단하다. 주변에서 그런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 전무했다. 그후로 아주 오랜 시간동안, 나는 인문학적인 것에 대한 교류를 갈망해왔었다. 나는 그 시간동안 대단히 소외감을 간직한 채 생활했었다. 괜히 친하지도 않은 동창들과 연락을 걸어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나는 여전히 혼자서 비밀리에 시를 쓰고 책을 읽던 아이였을 뿐이었다. 나는 평생을 '쓸데 없는 것'만을 사랑하면서 살아왔었다. 나는 유용한 것이 싫었다. 따라서 예술은 그 자체로 무용해야만 했다. 정의는 나에게 있어서 그저 낭만적인 행위였다. 그리고 나는 그 낭만적인 행위에 사로잡힐 따름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돈이 싫었고, 그저 예술적인 것들이 좋았던 것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는 것이지만, 아마 우리집이 부유했다면 나는 경제학이 아니라, 미술을 전공했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하다. 지금도 그것은 내게 쓰린 경험으로 무의식 중에 각인된 것 같다. 사실 나는 지금처럼 분석적으로 명료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원래의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1년 전 1학년 때 만든 학급문집을 꺼내보면서 추억에 젖어 눈시울을 붉히던 아이였다. 예쁜 커피잔이 좋다며, 물을 마실 때도 손잡이를 꼬옥 쥐고서 차를 마시듯 마시는 꼬마 아이였다. 상처 잘 받는 아이였고, 어릴 때부터 잘 울어서, 아빠는 늘 나를 여자애라고 나무라셨다. 나는 그런 아이였다. 아마 그 아이가 지금도 내 안에 움츠리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만 하면, 음울하고 눈물이 나는 이유는 아마 그 아이가 불쌍해서 일지 모른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어느 순간부터는 혼자서 대안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혹은 그런 기업에 들어가고 싶다고 각종 망상을 했었다. 그런 생각을 꽤 오래 했었던 것 같다. 과연 2007년 대선에서 문국현에 한표를 주던 나 답다는 생각이다. 2007년이면 내가 1학년 때였다. 유한킴벌리, 대안기업, 존 레논, 슈마허, 무하마드 유누스, 당시 나의 이상을 보여주던 모습들이다. 그러던 과정에서 하워드 진의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나에게 영향을 주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언제부터 마르크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는, 나로서는 의문이다. 처음으로 읽었던 책은 공산당선언이었다. 내가 당시에 그 책을 왜 읽었을까. 공산당선언을 읽었을 때는 휴학을 하고 공익요원으로 복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직원들은 다들 요즘에도 이런걸 읽는 사람이 있냐며 한마디씩 했었다. 마르크스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오는 것이다.
그 이후로는 에리히 프롬, 사르트르, 같은 것들을 읽었고, 아나키즘에도 흥미를 가졌다. 그 당시 읽었던 책 중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익숙한, 그러나 그 당시에는 전혀 처음 들어봤던 인물들이 역자로 있는 경우도 있는데, 바로 홍세화와 정성진과 같은 인물들이다. 그렇게 68혁명이나, 프랑크푸르트 학파 등을 읽었고, 그 이후로의 기록은 자세하지 않고, 불완전하다. 철학에 관심을 갖던 것은 특히 21살, 22살 사이였고, 함께 공익요원으로 복무하던 박모 형의 영향이 있었다. 푸코는 순전히 그 때문에 접근한 것이었다.
좌우간 그 이후로 언제인가는 알튀세르를 읽었고, 또 언제인가는 라캉을 읽었고, 카프카에 빠져들었던 적도 있었다. 알튀세르를 읽었던 것은 상당히 예전이지만, 알튀세르나 여성주의, 뒤메닐과 같은 것에 대한 영향은 모 단체와의 교류를 통한 것이었다. 웨스턴 마르크스주의와 알튀세르주의 사이에 무게 중심이 후자로 옮겨간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였다. 브로델과 같은 역사학자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의외로 그 모 단체와는 무관한데, 복학을 한 이후 언제인가 시험이 끝나고서 도서관에 들렀는데, 브로델의 총 6권짜리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가 대단히 멋져 보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존재하는 저마다 무수히 많은 것들에 대한 관심들은 한동안 대단히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사라진 것들인데, 그 근저에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어하는 철 없는 추동심이 있었던 것과 한편으로는 저마다의 사적인 이유들이 존재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의 기억을 다 끄집어 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