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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9일]
오늘은 내 이야기를 조금 할까한다. 요즘 나는 머리를 기르고 있다. 처음에는 딱히 자르지 않은 것이었다면, 요즘은 기르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머리가 꽤 길다. 예전에도 지금처럼 머리가 길었던 적이 한번 있었는데, 그때 보다 지금이 더 긴 것 같다. 딱히 파마를 하지는 않았지만, 생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다. 뒷머리는 질끈 꽁지머리를 하고, 옆머리는 귀 뒤로 넘기든가 말든가 그런다. 앞머리도 꽤나 길어서, 수업이나 공부를 할 때는 여간 걸리적 거리는게 아니라, 실핀으로 정리를 한다. 젠더화된 발언을 하자면, 남자치고 머리가 꽤 길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한 어릴 때부터 줄곧 긴 머리가 좋았다. 초등학생 때도 긴 머리를 선호했던 것 같다. 거의 기억나지는 않지만 말이다. 중학교가 되어서부터는 긴머리에 대한 애착이 특별했다. 나는 중학교에 올라올 무렵 사춘기를 앓았는데, 나는 그때 긴머리가 나의 감수성이자 영혼과 같은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나는 바람에 내 머리가 날리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바람은 언제나 나의 감수성을 자극시켰다. 그리고 긴 머리는 그런 바람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그 무엇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두발규제 때문에 머리를 자주 잘라야했다. 중학교에서도 그런 규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전혀 그 규제에 걸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가 두발규제에 걸리지 않을 만큼만 머리를 길렀던 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학교에서 소박한 아이였던지라, 특별히 검사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는 반삭발을 한번 한적이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규제들이 한편으로는 고등학교에 와서 나에게 부과되는 부조리한 환경처럼 여겨졌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비교적 여유로워진 규제 때문에 조금 더 넉넉하게 머리를 기를 수 있었는데, 당시 반에서는 꽤나 머리가 긴 두발규제에서 요주의 인물쯤 되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떄의 머리 길이가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긴 것이 아니었다. 사실 결코 아니었다. 머리를 마치 여자처럼 길렀던 적은 내 인생에 딱 두번이 있는데, 그중에 한번이 바로 지금이고, 나머지 한번이 스무살, 스물 한살 때였다. 대학생 때, 아무래도 고등학생이 아니었던지라, 그 아무런 규제도 없는 생활에서 기르고 싶은만큼 머리를 길렀지만, 정말 여자처럼 머리를 길렀던 것은 스무살 후반이었다. 주변에서 다들 내 머리가 길다고 자르라고 했었는데, 나는 꿎꿎히 버티고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그리고 1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는데, 그때부터는 정말 작정하고 머리를 기르기 시작하였다. 그당시 나에게 긴 머리란 어떤, 히피의 상징과 같은 것이었다. 나의 자유분방한 사고를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는 내 머리가 특별히 길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어느날 내 옆머리가 내 입속에 들어가는 것을 깨닫고, 내 머리가 길다는 것을 꺠우쳤다. 그 이후부터 내가 인지하고서 머리를 길렀다. 그리고 히피사상과 록음악은 그런 나의 행동을 합리화시켜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런 연유로 머리를 기르는 것은 아니다. 일면 차별화하고 싶은 욕구가 없지는 않지만, 그렇게 강하지는 않다. 나름의 불편함도 느끼고, 히피음악에 그렇게 심취해있지도 않는다. 중고등학생 때처럼, 짧은 머리가 어떤 세계의 부조리함을 지시하지도 않고, 긴 머리가 나의 감수성, 영혼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나는 긴 머리가 그렇게 엄청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요즘은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이 좋다. 사실 예전에 머리를 길렀을 때는, 그 지저분한 것이 자기만족이 되었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그렇다면, 내가 왜 머리를 기르는가, 이야기하자면, 그냥 긴 머리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다. 물론 짧은 머리도 마찬가지인데, 긴 머리에서 짧은 머리가 되는 것은 금방이지만, 짧은 머리에서 긴 머리가 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별로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냥 차분하게 정돈된 내 긴머리가 제법 괜찮다고 생각한다. 당분간 머리를 자르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