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일]


우울하다. 우울한 기분이 들 때면, 특히나 한밤중에 이렇게 우울한 기분이 들 때면,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한다. 밤은 대단히 이상한 힘을 가졌다. 사실 아마도, 하루의 끝에서 맞이하는 슬픔은 더이상 아무런 사건도 생기지 않는 하루의 끝, 즉 영원한 시간 속에서 내가 슬픔을 헤어나올 계기를 발견할 수 없는 이유 탓이겠지. 아무래도 오늘밤도 나는 불면증에 시달릴 것 같다. 끝이 없는 시간 속에서 느끼는 음울함이란 정말 싫다.

 

괜히 옛날 생각이 난다. 어릴 적 생각. 왜냐하면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우울함에 무능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지금 스물 다섯 아니 이제 스물 여섯의 나는 우울함에 참 무능력하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그런 생각이다. 예전에는 지금 보다 더 많이 우울해 하였지만, (또 더 기뻐했다) 지금처럼 이렇게 슬픔에, 우울함에 속절없이 대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스물 여섯이 아니라, 열 여섯의 나는 지금 보다 훨씬 건강했고, 강인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지금의 나는 감수성도 거진 잃어버렸고, 슬픔에 너무나 허약한 것 같다.

 

사실 일찍 잠들기 위해서라도 나는 당장 불을 끄고 누워야 하지만,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은 이유가 있다. 열 다섯의 내가 슬픔에 대처하는 방법을 다시 되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시절 내가 슬픔과 조우하던 방법은 지금처럼 무료한 응시로 생각 자체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 였다. 그시절 내가 일기를 쓰던 주된 이유는 바로 슬픔 이었다. 우울할 때면, 나는 공책을 꺼내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그 시절은 돌아오지 않는 것 같다. 어딘가로 도피하고 싶다.

 

장롱. 어릴 적엔 늘 그 안에서 울었다. 나의 그 장롱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언제인가부터 그 공간이 좁고 답답해서, 나는 더이상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 장롱에 들어가서 장롱문을 꼭 닫아버리면, 그공간은 오로지 나를 위한 공간이었는데. 깜깜했지만, 나는 그곳이 좋았다.

 

새로운 문제집을 사서 풀면, 공부가 잘 될 것같아서, 지수와 로그 부분을 가장 많이 풀듯이, 걸음마부터 다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예전에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때부터, 혹은 스무살 때부터를 상정했었는데, 걸음마부터 처음부터 다시하면 어떨까. 나는 몇살 때 처음으로 혼자서 걸음을 걸을 수 있었을까. 슬프게도 나는 어린 시절에 간직하던 거의 모두를 버리고 온 것같다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