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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8일]
이모 교수님과의 면담이 진행되었다. 중간중간 내가 실수한 부분도 있는 것 같지만, 성과는 있었다.
나에게 많은 이들이 지적해주었듯이, 지식인 혹은 교양인으로서의 공부를 한다는 것과 학자로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전자는 수평적 지식을 후자는 수직적 지식을 공부하는 것이고, 다시 수직적 지식을 공부한다는 것은 일정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 지식의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가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내게 제일 먼저 던졌던 질문은 세부전공으로 무엇을 공부해보고 싶으냐는 것이었다. 나는 정치경제학에서부터 무수한 나의 관심사를 표명하였다. 물론 도움이 안되는 발화였다. 무엇을 공부할지가 분명히 정해져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따라 나의 선택지가 분명하게 달라질 것이라고 하였다. 전자라면, 정해진 교수가 있는 대학으로, 후자라면 자대 대학원을 추천하셨다. 나도 공감하는 바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리저리 다양하게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핵심적으로 다루어졌던 것은 정확하게 어떤 것을 공부하고 싶은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다. 그것은 진실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첫째로, 진학에 영향을 미치고, 둘째로 앞으로 학문으로의 길에 영향을 미치고, 셋째는 나의 동기에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하자면, 둘째는 내가 앞으로 어떤 연구주제를 잡는지에 따라 내가 부딪힐 벽이 무엇인지 배후에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또 셋째는 공부를 계속한다는 과정은 분명히 지난한 과정일 텐데, 그 과정을 극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진실로 교수님이 붙들고 계시던 화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교수님은 학자라면 누구나 언제인가 그것이 무엇에 의한 것이든, 지적 장벽에 부딪힌다고 말씀해주셨다. 이모 교수님은 사상사를 전공하신분이신데, 석사때까지는 수리적 모형에 대해 중립적이었지만, 석사 이후 그것을 포기하셨다고 말씀해주셨다. 이유는 벽에 부딪힌 것이었다.
고로 나도 나의 벽을 실험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벽은 앞으로 대학원 진학전까지 공부를 최선을 다해서, 어려운 것으로 판명난다면,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그가 포기라는 직접적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음에도 말이다. 영어와 수학은 실험의 대상이 될 것이다.
마르크스를 대상으로도 많은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교수님은 마르크스를 공부해도 좋고, 아니어도 좋을텐데, 마르크스의 낙인효과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으셨다. 그것이 반공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아님에도 말이다. 다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남들이 포기하고 안하는 분야라도 동기가 된다면 좋은 결과나 있을 수도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나에게 사회학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나는 웬일인지 경제학으로 마음이 거의 굳힌 상태이다. 그 이유는 비단 경제학이 돈이 되기 때문임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그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리지 못하였는데, 아직도 그 이유를 잘 모르지만, 생각해봐야겠다. 매우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그렇다면 도출되는 질문은 다시 회귀적인 것이다. 나는 경제학을 왜 공부하려고 하는가, 이다. 이는 선택되지 않은 세부전공에 대한 질문과도 상보적이리라 생각한다. 분명히 선택이라는 것은 순수한 이념의 결과는 아니다. 여러 사회적 경제적 조건들의 중층결정이다. 그러나 분명히 나도 경제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이 꽤 강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바로 그 이유가 지금 드러나지 않은 나의 핵심적인 물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