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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얼마 전, 거시경제학 스터디가 끝이 났다. 정운찬의 ‘거시경제론’ 10판으로 하던 스터디였다. 그리고 그 책의 말미는 작금의 경제위기와 주류경제학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현대거시경제학은 완전한 상태에 대한 숭상과 DSGE, 즉 동태확률일반모형에서의 미세조정을 믿고 있고, 그것은 작금의 경제위기를 예측하지 못하였다고 지적하였다. 이에 따라 정운찬은 심리학적, 사회학적 기초에 따라, 더 현실적인 가정을 통해, 경제학이 진보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행태경제학은 이러한 주류 현대경제학이 내놓은 해법 중 하나였다. 그것은 객관주의에서 주관주의로 변모함으로써 성립한 현대경제학이 다시금 주관주의의 심화로서 그것을 타개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이 주관주의 자체를 단지, 객관주의가 아니라 주관주의 그것이라는 이유로 박대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닐 것이다. 무조건 객관주의가 옳은 것이고, 주관주의는 아니라는 것은 그저 사변이고, 편협이고, 지극히 멍청한 도출일 것이다. 하지만 이 주관주의의 방법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차치하고 생각해보자면, 나는 사회학적 기초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고전파 경제학에서부터 현대경제학에 이르기까지, 주류경제학은 이른바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경제인의 표준이었다. 하지만 일찍이 마르크스가 비판하듯, 경제인이라는 것은 로빈슨 크루소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에 사회학적 기초란 것은 이와 같은 내용이 아닐 것이다. 경제이론에서 로빈슨 크루소의 경제인을 대신할 사회학적 기초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계급이고 관계일 것이다. 나는 사회과학은 분명 관계에 대한 학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편으로 뒤메닐과 레비가 ‘관리직 가설’이라고 부른 것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본다. 또 앞으로 이를 주제로 하여, 공부를 계속한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