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개인적으로 신자유주의를 해석하는 몇 가지 입장을 정리하는 가운데 확장된 것으로 김성구 교수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입각한 해석과 윤소영 교수의 이윤율의 경제학에 입각한 해석을 비교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김성구 교수의 해석은 바르가로부터 소급되는 것으로 보이며, 반면 윤소영 교수의 것은 뒤메닐이나 폴리의 작업, 더 나아가 짜로골프의 것으로 소급되는 것으로 보인다.


주로 사용된 서적은 김성구 편저의 『현대자본주의와 장기불황: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시각』과 윤소영 교수의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과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이다. (공교롭게도 한신대학교, 같은 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는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다.) 이윤율의 경제학에 대한 비판으로는 김성구 교수의 글에서 주로 기반하고 있는 것이며, 나머지의 내용에서 상당수는 감상적 단상이다.


김성구 교수는 단계론에 입각한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러한 입장에서 만델의 장기파동론, 아리기나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 대한 비판을 진행한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윤소영 교수의 자주 원용하는 것들이기도 할뿐더러, ‘역사적 자본주의’, ‘이윤율의 경제학’ 등의 용어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윤소영 교수에 대한 비판을 의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김성구 교수는 세계체제론적 시각을 장기파동론의 특수한 경우로 취급하면서, 비판을 진행하는데, 이는 구조적 위기와 순환적 위기를 구분하는 과정에서 후자의 실현 공황적 성격을 부각하면서, 세계체제론의 경우 이러한 상이한 종류의 위기론을 무차별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헤게모니 순환과 콘트라티예프 순환 사이의 연관이 불편한 것이며,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과정에서의 논리적 설명이 미흡하며 이를 역사적 설명으로 대체되고 있음이 지적된다. 나아가 미국 자본주의의 변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법인자본주의와 수직적 통합에 대한 설명이 자본주의 일반을 분석함에 있어서 덜 일반적인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이는 역사적 분석에 대한 비판과정에서 등장한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볼 때에 이 비판은 치명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대신에 공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이윤율 저하만을 지적하고 실현공황과의 관계를 경시하거나 무차별하게 고려하면 안 된다는 지적은 최근에 내가 하던 고민들을 일정 해결해주고 교정해주었다. 세계체제론자들의 이러한 무차별은 그동안 암암리에 내가 혼란스럽게 이해하도록 도왔다.


또한 경쟁자본주의를 상정하고 있는 『자본』을 넘어서, 제국주의론이나 독점문제 등을 포괄할 수 있는 정치경제학 비판의 이론적 진전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알튀세르의 『자본』에 대한 특권화와 스피노자-프로이트-마르크스를 경유하여 마르크스주의의 일반화를 시도하고 있는 윤소영 교수의 작업과는 상이한 것이다.


한편 윤소영 교수의 작업은 뒤메닐, 폴리, 월러스틴, 아리기, 짜로골프 등 다양한 경제이론들과 스피노자,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의 다양한 정치철학적 이론이 등장하는데, 이는 언뜻 보기에도 그것들의 논리적 정합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또한 김성구 교수의 생각은 모르지만, 나의 여러 사적인 관계에서 보고 들은 여러 사적인 이야기를 종합하여도 그러한 식의 비판이 실제로도 존재할 것으로 믿어진다.


김성구 교수는 위와 같은 비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방법이 가지는 과학성에 대해서 강조를 하고, 한편 자신이 비판한 대상들의 비과학성을 피력한다. 그리고 이는 꽤 흥미로운데, 왜냐하면 그러한 주장이 정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러한 방법이 개인적으로 수용되는 것은 아니다. 김성구 교수의 방법은 다분히 마르크스의 저작을 엄밀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인상이 드는데, 나는 그 논리적 엄밀성만큼 그것의 과학성에 대한 의심이 간다.


여기서 우리는 과학이 무엇이냐는 발본적인 질문을 감행해야 할 테지만, 차치하도록 하자. 대신에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김성구 교수가 반대할 것이라고 의심되는 부르주아적 과학관에 경도되었다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성구 교수의 과학은 내가 다분히 감상적으로 느끼기에 부르주아적 입장에서 과학이기 보다, 오히려 철학적이거나 사변적이고, 더 나아가 교조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헤겔이든 칸트든 위대한 철학자들의 책이 (읽어보지 않더라도) 매우 논리적으로 쓰여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과학은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수학적이고 기계적일지라도 부르주아적 과학관이 더 유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기계론적 해석은 다분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차이에 대해서, 윤소영 교수의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질의응답 부분에서 일정부분 설명되는 부분이 있다. 이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단계론과 경향론에 대한 차이로, 단계론의 바르가와 경향론의 짜로골프와 발리바르에 대한 설명이 소략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