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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12/2013121204063.html
나는 안녕합니다. ‘진보의 요람’이라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온 어느 인디뮤지션의 노랫말에서처럼 “별일 없이 살고” 있습니다. 눈이 많이 내립니다. 학창시절 친구 한 명은 눈이 쌓여 도로가 막힌다고 불평을 하고, 나는 학부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도서관에서 마지막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목 감기에 걸려서 목이 조금 부었지만, 목 아프지 말라고 생강차를 끓여주는 연인을 만나고, 그녀가 준 편지를 읽으며 더 없이 기분 좋게 살고 있습니다. 대학원에 간다는 명목 아래 그 흔한 4학년 대학생의 취업준비도 한번 안하고,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독일의 어느 시인이자 극작가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고 일컬었나요. 그런데 브레히트는 아주 비루한 글쟁이거나 생각머리가 조금 잘 못되었나 봅니다. 이 시대 12월은 애석하게도 그 어느 때 보다 사랑노래가 넘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가 평화로운데, 모두가 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유독 당신은 심기가 불편한가 봅니다. 나도 모르게 당신의 물음을 회피하고 있었는데, 나를 찌르는 저의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공교롭게도 지금 쓰는 이 글은 당신 때문입니다. 이 쓸데없는 글을.
고려대학교라고 했습니다. 나를 떨어뜨린 그 학교의 이름이 처음에는 보기 싫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SNS를 통해서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 앞 돌담에 십여개의 대자보가 붙인 풍경을 보면서, 내심 부러웠습니다. 그리고서 깨닫는 것은 나 자신의 역겨움이었습니다. 아니, 조금 불편했습니다. 불편해서 신경 쓰여서 가만히 그냥 잠들 수가 없었습니다. 마르크스를 공부하겠다고 대학원을 호기롭게 선택하고서, 내가 하는 행동들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남의 대학 담벼락이나 부러워하는 꼬라지라니. 창피합니다.
민영화 반대를 내걸고 파업에 동참했던 노동자 7000여명이 직위해제가 되고, 시골마을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자 주민이 자살을 하고, 그밖에 사상 초유의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사태, ‘빨갱이’를 말살시키겠다고 몰아치는 메카시즘,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수천 수만의 불법파견 노동자들, 해고자들, 어디 여기까지가 전부겠습니까. 자본과 국가의 폭력은 공고합니다. 그런 시대 이런 시기에 안녕하시냐, 라구요? 하지만 나는 태평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안녕합니다. 잘 살고 있어서, 잘 살고 있지 못합니다. 안녕해서, 안녕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