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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매우 이상한 오전을 맞이하고 있다. 어제는 술에 취해 절어있었고, 어제부터 연이어 언론은 모 여객선 침몰 사건에 대해서 보도하고 있다. 나는 나와 이론 그리고 세계에 관하여 짐짓 고민을 하게 된다. 어제 모 사회학과 선생은 내게 나르시시즘이라고 말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완전히 극복되지 않은 이들 중에 자주 보이는 것이 바로 나르시시즘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나는 정말로 여전히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강한 아버지, 그리고 나약한 아버지를 사랑하고 또 증오한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또 증오하기에 나는 더 단단한 남근이 되도록 더 요구하고 또 열망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늘 말하는 보수적이고 강고하고 성실한 아버지, 나는 아버지를 사랑한다. 아버지를 넘어서고 싶다.
얼마 전 늦은 시각 집에 들어가는데, 아버지는 주무시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 일찍 일찍 다니라는 잔소리를 하셨다. 나는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순간 화가 났다. 나는 저 잔소리를 도대체 몇 년 째 듣고 있는 거고, 또 무슨 대학원생이 일찍 일찍 집에 들어가느냐는 말이다. 물이나 한잔 마시고 방에 들어가려는데, 아버지가 한마디 더 하셨다. 우유도 있는데 물 말고 우유 마시지. 나는 순간 깨달았다. 아버지의 잔소리는 다른 것이 아니라, 그저 한마디 내게 건네고 싶으셨던 것이다. 나는 순간 그 완고한 아버지가 무척이나 나약해 보였다. 사실 강인한 아버지가 어느 새인가 나약한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은 어제 오늘 일도 아니었다. 어쩌면 아버지가 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시는 이유는 나를 기다리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맞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방에 들어가면 오래 지나지 않아 주무시러 들어가신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와 나를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마 내가 아버지의 나약함을 깨달았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고등학생 즈음이었다. 나는 어릴 적 자기연민을 가지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혼란스럽게 뒤섞여버렸다. 경제학에 대한 나의 인상은 어쩌면 내가 아버지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과도 닮아있다. 어쩌면 그것은 동치일 것이다. 그것은 강인하고 엄격하고 성실하며 보수적이다. 때문에 내가 경제학에 관한 또는 사회과학에 관한 어떤 이론에 대한 욕구는 사실 아버지에 대한 투쟁과 애착에 다름 아닌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넘어서야만 했다. 나와 이론(아버지)의 관계는 이렇게 설정되는 것이다.
이제는 어제 있었던 여객선 침몰사건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이것은 나와 아버지 사이의 대당 관계를 자폐증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유일한 빛이다. 나도 여객선 침몰사건에 대한 기사들을 보면서, 감정이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사실 남들만큼 그렇게 감정이 이입되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그들 기사들을 보면 슬픔보다는 분노가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폐적인 냉혈적인 기질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기사가 참 걸렸다. 기사의 내용인 즉, 주변 어민들이 수색을 돕고 있고, 초기 구출된 사람들도 대부분 어민들이 구조한 것이다. 어민들은 생업도 포기하고 구출작업에 힘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떤 경외감, 그리고 경제학에 대한 또는 기성의 사회과학에 대한 모종의 회의감을 느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사회의 처음이 아니다.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건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단순히 신화적인 일이 아니라,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찰되는 사회현상이라면, 그것은 더욱 더 중요한 현상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렇다면, 우리는 기존의 방식대로 사회를 바라볼 수 없다는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즉 이론은 바뀌어야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회는 개별 주체들의 효용극대화를 통한 경쟁균형이 이루어지거나 계급적대로 환원되는 정치경제학은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좀 더 사회는 자생적이고 자율적이며, 개별적이기보다는 집단적이고, 균형보다는 불균형이며, 즉각적이기보다는 어떤 동학이 존재하고, 자기실현적이라기보다는 어쩌면 그 반대인, 나도 내가 무어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