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한동안 좌절감이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마음은 이제 좀 사그라들었지만, 말이다. 좌절감이 사그라진 지금에서야 나는 펜을 들었지만, 어떻게 보면, 이제서야, 무미건조한 글로서라도, 내가 느낀 감정을 서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다.

사건의 시작은 내가 수년만에 고등학생 때 친구 두명과 오늘 만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보통의 존재들은 내게 좌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완고하고, 자유주의적이며, 부도덕하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능력하다. 그게 내 생각이다.

자유주의자들이 사고하는 것처럼, 세상은 그렇게 논리적이고, '화목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오늘 내가 몇번씩 다시 보던, 경찰이 시민을 이유 없이 움직이지 못하게 둘러싸던 동영상, 그런 일은 매우 사소한 사례일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건 나 같은 책상머리 선생에게도 마찬가지로 고발해야할 것일 뿐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파수꾼>이라는 영화가 있다. 지금 검색해보니, 윤성현이라는 분이 감독이고, 2010년 영화다.

영화 <파수꾼>은 절친이었던(또는 절친으로 묘사되었던) 3명이 어떻게 틀어지고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지, 그리고 자살한 친구는 왜 자살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그리고 자살한 아이의 아버지는 그 친구들을 수소문하면서 그 친구들에게 왜 자살하게 되었는지, 물으러 다니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친구들 사이의 미묘한 갈등은, 당사자들(3명)이 아니면 결코 알 수도 없고,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수 없는, 미묘한 것들이다. 자살한 아이의 아버지는 묻고 또 묻지만, 결코 그 진실을 알 수 없다. 알려줄 수도 없다.

그리고 이런 영화의 내용은, 나 같이, 현장보다는 책상에 앉아있는 사람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그건 마치, 현실과 책상 사이의 간극으로 유비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세명의 친구들과 아버지 사이의 "인지적 간극"이 진실을 접근할 수 없게 만들었듯이, 현실(현장)과 책상(글) 사이에는 커다란 인지적 간극이 존재한다.

덧붙여서. 사족이지만, 일베 가지고 사람들이 떠드는 것이 많은 이유들도, 어떤 측면에서는, 그 인지적 간극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것들은 한편에서는, 매우 자연스럽고 이상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또 한편에서 논객?들에게 당혹스러운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또 덧붙여서, 나는 학교에서 대학원을 간다고 하니, 모 교수님께서는, 너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들을 보아하니, 대학원을 가지 말고, 우선 취업해서 일을 하다가 오라고 말하셨다. 일도 안해보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Foley 밑에서 공부하시고, 이제는 주류경제학을 하시지만, 과연 다르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