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에,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라디오 듣기 라고 대답했었다. 음악취향이 형으로부터 독립한 것도 라디오를 듣게 된 시점 즈음 이었다. 그때가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때부터, 몇년 동안인지 모르겠지만, 고등학생 언젠가 그때까지 라디오를 한참 들었다. 한 2-3년 정도, 사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 때동안 나름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그때가 언제즈음이냐면, 소리바다가 유행이었다가 다시 좀 사라지고, 옙이나 아이리버 엠피가 유행일 때였다. 그리고 애들 사이에서 아직 애플이 유행을 타기 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팟을 들고 다니는 애들도 종종 있었는데, 소수였다.


나는 MBC FM4U를 들었다. 91.9Mhz 지금도 기억난다. 내 기억으로는, 6-8시는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나왔다. 아티스트 미니 스페셜, A-Z라고, 유명한 뮤지션들을 알파벳 순서대로 매주 한명씩 소개해주던 코너가 기억나고, 수요일마다 하는 라이브 공연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당시 Soul n Gene이 나와서, "never falling in love again"을 불렀던 기억이 난다. 슬픈 노래지만, 경쾌한 노래인데, 당시 배철수가 요즘에는 슬픈 노래도 이렇게 부른다며, 한마디 했던 기억이 난다.


8-10시에는 조정린의 친한친구가 했는데, 나는 그 시간만 피해서 라디오를 들었다. 그후 라디오 DJ가 바뀌었는데, 그 후에도 이 프로그램은 보지 않았다. 음악 프로그램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 그런것을 혐오했다. 그 다음, 10-12시에 하는 이소라의 음악도시가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프로그램일 것이다. 당시 이소라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라디오를 듣기에 가장 좋은 시간대였다. 일요일에는 델리스파이스의 보컬이 나와서 함꼐 진행하던 코너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2-1시에는 유희열의 올댓뮤직을 했다. 당시 유희열은 시부야케이나, 보사노바 같은 음악들을 종종 틀어줬고, 내가 Fantastic Plastic Machine이나, Cymbals, 이번에 내한도 오는 D' sound 같은 그룹들의 음악을 듣는 이유는 순전히 그때의 경험 때문이다. 올댓뮤직에는 당시 더올, 더듬이와 올가미 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던 코너였다. 더듬이와 올가미는, 외로운 솔로를 위한 코너였는데, 당시 영어 선생님도 그 코너의 애청자였다. 한번 여기에 내 사연이 당첨된 적도 있다...


1-3시는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이었나, 고스트 스테이션이었나, 하는 프로그램을 했다.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늦은 시간에 했기에, 졸면서도 많이 들었다. 늦은밤에 헤비메탈이 울려퍼지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에 고민상담을 해주는 코너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좀 같잖은 감이 없지 않다. 무슨 마왕이라니,,


지금 하는 이야기들이, 정확히 10년전 이야기라는 것이 사실 좀 놀랍다. 10년 전 일들을 다 기억하고 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이 이야기가 10년이나 지났다는 게 사실 더 신기하다. 나는 그렇게 나이 먹은 것 같지 않은데 말이다. 내가 라디오를 잘 안듣게 된 이유는, 두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고등학생이었기에, 야자를 해야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이제 나의 음악 취향도 라디오로부터 독립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더 이상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들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라디오는 나에게 음악적 해방구라기 보다는 추억팔이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나도 라디오를 들으면서, 옛날 어른들이 해보던,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하는 것도 해봤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걸 하는 사람들은 없겠지. 그런데 카세트 테이프 녹음보다, 더 많이 거의 항상 하던 건, 노래 제목을 곧바로 적도록 옆에 메모지를 갖다 놓는 일이었다. 어떤 노랜지 듣고 좋으면 소리바다에서 다운받기 위해서였다. 노래제목을 놓칠 떄에는 방송에서 몇번째로 틀어준 노래인지 그 순서를 기록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그날그날 선곡표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새는 스마트 폰으로 음악 검색 한번이면 찾을 수 있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