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요즘 유행하는, 나에게 영향을 준 책, 10권 목록을 쓰면서, 몇가지 빠뜨린 것들이 있어서, 그것들을 안쓰고 지나가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 추가 목록을 쓰기로 했다. 이 중에는, 미쳐 생각나지 않아서 빠뜨린 것도 있고, 10개의 숫자를 맞추기 위해서, 비슷한 군의 책을 고의적으로 빠뜨린 것도 있다. 먼저는 내가 지금과 같은 정치적 입장과 생각을 가지게 되기까지 그전에 읽은, 스무살, 그리고 스물한살의 책들이 있다.


11.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나는 지금도 이 책을 서점에서 발견하면, 가끔 사고 싶단 생각을 한다. 소장용으로 말이다. 나는 당시 등하교길 버스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 이상하게 책을 읽다가 학교에 와서 보면, 안경에 이물질이 묻어있는 것이 이상하다고 여겼었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눈물을 흘려서 그런 것이었다. 감수성이 풍부한 나이였기도 했지만, 나는 당시 반 고흐를 참 좋아했다.


12. 송현, <젊은 날에 만나야 할 시인 함석헌> / 함석헌,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 어느날 학교를 걸어가는데, 캠퍼스에 파손 도서 할인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아무 책이라도 사서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정말 오랜만에 책이란 것을 한권 샀었는데, 고민고민해서 산 게 이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통헤서 함석헌 선생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가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그 이후 그의 자서전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도 읽었던 기억이 있다.


13. 실벵 다르니, 마튜 르루, <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 - 이 책까지는 내가 그리 급진적인 사고를 가지지는 않았다. 대안기업가라니,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사고로는 그리 흥미를 이끄는 책은 아니다. 나는 아주 내생적으로 아주 천천히 나의 사고를 왼쪽으로 틀어왔는데, 반고흐도 거기에 빼놓을 수 없는 자리였고, 함석헌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책에서부터, 약간씩 보통의 사람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생각이나 여지가 생겼던 것 같다.


14. 하워드 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나는 한동안 이 책제목을 아주 좋아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도 이 책의 제목을 종종 인용한다. 도서관에서 무슨 책을 읽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 책이 그나마 나을 것 같아서, 빌렸는데, 당시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조금씩 좌경화되었다. 그 이후에도 몇권의 책들을 여기에 덧붙일 수 있을텐데, 여기서부터는 목록만으로 대체해도 크게 무방할 것 같다.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장 폴 샤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조제 보베, 프랑수아 드푸르,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알렉스 켈리니코스, <반자본주의 선언>, 에리히 프롬, <소유냐 삶이냐> - 이 때당시만 해도,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의 역자가 홍세화인지도 몰랐고, 켈리니코스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지도 몰랐다.


이 다음부터는, 겉멋이 들어서, 이래저래 유명한 철학자들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책들을 다 읽지도 못하고 중도포기했었다. 그래서 그 수많은 '중도포기'의 책들에 대한 기록은 아쉽게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기억도 거의 나지도 않는다. 그래도 꾹 참고 읽었던 책들도 있었는데, 대부분 서구 구조주의 또는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들의 책들이었다. 푸코, 알튀세르, 라캉, 바디우, 랑시에르 등이 그것이다. 물론 나의 신변잡기는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로 한정되지도 않았다. 여러 책들을 그저 손만 대고, 또 포기했었다. 그러한 책들을 여기에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내가 아무리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더라도, 별로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때문에 그중에서 몇가지들을 선별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알튀세르의 경우, 그 당시 읽기도 했지만, 당시 나에게는 별로 유익하지 않았다. 알튀세르를 좋아하게 된 것은 순전히 윤소영 때문이었지, 내가 무슨 알튀세르의 저작을 직접 읽고서 유익했다거나 그런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글이 지독히도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15. 기 드보르, <스펙타클의 사회> / 라울 바네겜, <일상생활의 혁명> - 내가 어떻게 드보르를 알게 되고 이 책을 구해서 읽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드보르와 상황주의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있다. 바네겜의 책도 그래서 읽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상황주의라는 것이 뭐하자는 건지 잘 모르겠다. 별로 흥미도, 매력도, 이점도 잘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그렇지만, 나는 상황주의에 매료된 것이, 푸코나, 알튀세르 같은 것을 읽기도 전의 일이었다. 말하자면 프랑스 철학의 fancy함을 인지한 것이 상황주의에 매료된 이후라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바네겜의 책은 변혁적인지, 그런것이 아니라해도, 나 개인적으로는 좋은 자기계발서가 되었다. 왜냐하면 상황주의자들은 권태를 용납하지 않았으니까.


16. 알랭 바디우, <조건들>, <철학을 위한 선언> - 사실 바디우는 내가 읽고서 나에게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내가 포스트주의를 경멸했기 때문에, 바디우를 읽었을 뿐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포스트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포스트주의에 대한 비판은 누가 나에게 알려주거나 말해줬기 때문에 내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원인을 기독교로부터 찾고 있다. 바디우는 단지 그 결과였을 뿐이었다.


17. 지그문트 프로이트, <성욕에 관한 세편의 에세이> / 자크 라캉, <욕망이론> - 사실 이 두 책을 하나의 카테고리에 묶는 것은 꽤나 아쉽다. 나에게 이 두 책은 비슷한 시기에 읽은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동일한 의미와 기억을 공유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씩 말해보자면 이렇다. 프로이트에 대해서는 사실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날 홍대 즈음을 지나가는데, 북 페스티발이 열렸고, 모 출판사에서 프로이트 전집을 매우 값싸게 팔았다. 그래서 무슨 책이든 사고 싶어서, 이 책을 샀을 뿐이었다. 그런데 진심으로 나는 이 책을 읽는게, 대단히 재미있었고, 그 이후로 프로이트를 상당히 좋아하게 되었다. 라캉의 경우는 어떻게 읽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리고 라캉의 책은, 내가 혼자 읽으면서 처음으로 이 책은 도저히 혼자서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까지 생각했었다. 내가 아트앤스터디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결제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라캉 때문이었다. 어쩄거나 끈기 있게 읽은 라캉은 지금도 기억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저주' 받을 문체지만.


18.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 - 광기의 역사는, 처음으로 '끝까지' 읽은 푸코의 책이었다. 내가 알던 모 형이 좋아하던 학자였고, 그래서 그 형이 추천해서 읽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푸코의 책 역시 결코 쉽지 않은, 아니 그냥 어려운 책이지만, 그래도 푸코는 나의 빈곤한 철학 독서록에서 큰 비율을 가지고 있고, 또 포기하지 않고 이리저리 헤집고 읽었던 학자 중 하나다. 작년 대학원 입학 전 푸코를 다시 읽은 기억이 있는데, 역시 푸코의 책은 어렵고, 재미있었다. 푸코와 마르크스를 유비하는 일도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이제 학자들 이름은 그만 나열하기로 하자. 쓰고 보니, 프로이트를 제외하면, 모든 사람이 전부 프랑스인이라는 점이 좀 씁쓸하게 느껴지긴 한다. 이제 문학책으로 넘어가기로 하자. 학자들 이름을 나열하는 바람에 문학책들 몇권이 생략되었는데, 너무 아쉬워하지는 않아야겠다.


19. 프란츠 카프카 - <변신/시골의사>, <성> - 나는 언제부턴가 문학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는데, 카프카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19살에 읽은 이외수 이후로, 소설을 거의 안읽기도 했었는데, 카프카는 그런 소설에 대한 나쁜 기억을 싹 잊게 만들어준 작가였다. 


20. 조제 바스콘셀루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 미하엘 엔데, <모모> - 나는 20개의 목록을 작성하면서, 내가 어릴 적에 읽었던 소설책들을 빠뜨린 것이 대단히 아쉬웠다. 그것들이 빠뜨리게 된 이유는, 기억나지 않았고, 또 기록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릴 때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은, 굳이 기록같은게 없더라도, 바로 단번에 말할 수 있는 책 두권이 있다. 그것이 바로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와 모모이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인가, 중학교 1학년 즈음인가에 읽었고, 내용은 잘 기억 안나도, 몇박 며칠로 이 책을 읽으면서, 밤마다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모모의 경우는 중학교 3학년 때 국어시간에 강제로 읽어야 하는, 그러니까 시험에 나오는 책 중에 하나였는데, 강제로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같다. 모모는 비판적이면서도 참 재미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