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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학회활동을 하다가 모 인물과 트러블을 겪은 적이 있었다. 기억도 잘 안나기는 하지만, 트러블이랄 것까지는 아니었고, 정기모임 중에, 모 인물이 내게 농담반 진담반, 아니 농담 30%, 진담 70% 정도의 어조로 내게 한 마디 한적이 있었다. 어떤 일 때문이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그가 했던 이 말만큼은 기억이 남는다. 그는 내게 '그놈의 도식화라는 말 좀 그만해'라는 말이었다. 내가 그렇게 도식화라는 말을 많이 쓰냐고 물어봤었는데, 그는 엄청많이 쓴다고, 그랬다.
그이후로 그 말이 은근히 기억에 남았었는지, 내가 그 말을 정말로 자주 쓰는지 살펴봤었는데, 정말로 꽤 자주 쓰는 것 같았다. 특히 어떤 복잡한 내용을 설명하려고 할 때, 나는 도식화라는 말을 쓰면서, 복잡한 내용이나 설명을, 나 나름대로 '도식화'하면서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로 그랬다. 아마도 내가 원래 그런 방식으로 생각을 해왔던 것이겠지만, 그것이 처음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은 중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는 딱히 공부라는 것을 하지 않았고, 그래도 시험기간에 시험공부란 걸 해본건 중학생 때부터였다. 평균점수는 70점대 정도 됐었다.
당시 시험공부를 할 때. 특히 국사나 기술가정 등 암기과목을 공부할 때, 내용을 나 나름대로 표로 작성해서 달달 외우곤 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도식화라는 걸 습관적으로 했었던 것 같다. 딱히 학교다닐 때 독서를 많이 하지는 않았었는데, 읽어도 주로 소설책을 보았었다. 이후에 대학에 와서 차츰 인문사회과학 책들을 읽기 시작했었는데, 그떄도 내용이 이해가 안가면, 책의 목차를 보면서 내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복잡한 것들은 단순화해서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다. 단순화는 복잡한 내용을 압축시키는데 유용했다. 경제학을 좋아했던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도식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두꺼운 교과서도 조야한 수학식과 그래프만으로 추려낸다면, 짧게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습관이 좀 사라진 것 같다. 일단 눈에 띄는 것은 도식화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더이상 도식화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 이제는 별로 내가 말할 기회가 없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요즘 내가 공부가 진전되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는, 도식화를 못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것이 별로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