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서 썼던 글들을 몇개 복사해 온 것들이다. 총 3개의 글이다.


[1]


피케티를 읽는 중이다. 얼마 안읽었지만, 몇자 쓰자면.


0. 우연하게도 두 모임에서 피케티를 읽게 되었다. 각각 <21세기 자본>과 <불평등경제> 를 읽는다. <21세기 자본>의 경우, 두껍긴 하지만 글이 어렵지 안하서, 생각만큼 부담스럽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 <21세기 자본> 서문과 <불평등경제> 1장을 읽었을 뿐이다.


1. 그동안 서평을 여러개 읽었는데, 그래도 서평보단 본문을 읽는 것이 유익한 것 같다. 필요하다면 2차텍스트를 읽는 일은 좋은 일이지만, 뭐든지 본문을 읽어야 재밌다. 학설사를 좋아해서, 학설사에 관한 글들을 자주 읽었지만, 누가 그렇게 말해서가 아니라, 내가 느끼기에, 그런 것이 있다. 학설사는 때때로 생각보다, 간단하게 요약되기도 한다. 그리고 2차서적에만 의존하면, 그 요약본에 의존하게 되는데, 어디 가서 아는척하면서 이빨까기엔 유용할지 모르나, 공부가 별로 되는건 없는 것 같다.


2. <불평등경제>와 <21세기 자본>의 책 구조는 대단히 유사하다. <불평등경제>의 경우 1997년 작이고, <21세기 자본>은 2013년작인데, 피케티는 이와 같은 형식의 원고를 아주 오래 전부터, 구상해왔고, 그 원고의 시작은 항상 마르크스와 쿠즈네츠 양자를 비판(or 비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피케티가 마르크스를 읽었네 마네 하는 시비는 상당히 무의미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가 마르크스를 상당히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즈네츠를 비판한다기 보다는, 쿠즈네츠도 반대하는 쿠즈네츠 곡선을 찬양하는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이다.)


3. 피케티를 읽고 있으면, 얼핏 케인즈의 <일반이론>이 생각난다. 둘다, 마르크스/신고전파경제학이 역사에 관한 deterministic하게 서술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그 자리에 정치를 삽입하고 있다. 케인즈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 보다, 노동자가 경제에 관해 더 잘안다고 칭송하듯이, 피케티도 그와 유사하게 경제학의 (수리)과학화를 비판하면서, 비전문가들의 민주적 토론이 주류경제학의 수학적 방법론을 대신 할 거라고 말한다. 물론 피케티는 케인즈 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역사에 대한 수학적 해석을 더 무용하게 만들고 있다.


3-1. 하지만 케인즈와 피케티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론적 공백에는 정치가 아니라, 이론이 삽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4. 피케티는 민주사회를 대단히 좋아하나보다. 얼핏 롤즈가 떠오르고, 또 얼핏 하버마스가 떠오르는 사람이다. 물론 이들 철학자에 관해 내가 별로 아는 바는 없으니, 말을 아끼도록 하자.


5. 사실, 피케티가 말하듯, 주류경제학자들 뿐만아니라, 대개 경제학자들은 대개 경제학에 관하여 어떤 선험적인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물리학자들이 비웃고 있으려나..


6. 어릴 때부터, 유행하는 건 안보고 안들었다. 유행과는 차별적인 고고한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피케티를 두 권이나 사서 읽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2]

<21세기자본> 독회, 리뷰.


1. 피케티를 직접 읽는 것은 생각보다는 재미있었지만, 피케티 읽기 모임은 생각보다 의미 없었다. 우선 책도 이왕 샀으니, 읽을 거고, 어차피 읽을거니, 좀 더 참여해볼 생각이다.


2.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셨다. 나와 모 박사과정생을 제외하면 모두 박사님/교수님들이다. 주요 전공은 1) 문학 2) 사학 3) 금융공학 4) 경제학 이었는데, 발언은 거의 3번과 4번이 독점했다. 특히 3번.


3. 금융공학과의 모 선생님이 거의 대화를 주도했는데, 상.당.히. 무용하고, 쓸데 없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 경제과 교수님들은 일부러 그러셨는지, 최대한 삐딱한 자세로 그 이야기를 들었고, ㅇㄱㅅ 교수님은 그 이야기를 1시간 반동안 듣다가, 결국 폭발하셔서, 모 교수님을 1시간동안 공격하셨다. 나는 그래도 짬밥이 있으니, 진지한 척, 열심히 듣는 척, 코스프레를 했지만, 그분은 과장 없이, 모임의 악성이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그 분이 이 모임의 주축 멤버다.


4. 그 모 분은 첫 소개서부터 (내 생각에 아주 고의적인데) 수학적 자부심을 마구 표현하시더니, 모임 내내 주제와 관련 없는 아주 쓸데 없는 잡소리들을 하셨다. 그 8할은 수학자랑과 애스모글루가 피케티 비판하는 걸 예찬하는 것이다. 다른 분이 어떤 이야기를 하면, 그 두 이야기만 반복하는데, 참 대단했다. 그렇다고 이론적인 걸 제기하는 것도 아니다. "애스모글루는 수학을 아주 잘하는 아주 훌륭한 사람인데, 그가 비판했다. 내용은 여기서 말할 수 없다"는 식이다. 하... 계급장이 없었다면, 나는 ㅇㄱㅅ 교수님이 말하는 것보다 더 쎄게 말했을 것 같다.


5. 다들 마르크스에 대해 어느정도 관심과 흥미가 있으신 분들이다. 그러나, 다들 마르크스(경제학)에 대해서 누구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추측성으로 표현했지만, 솔직히 단순 추측이 아니다. 눈을 가리고 코끼리를 만진 경험으로 한마디씩 묘사하는 것같은 인상이었다. 마르크스에 대해서 발언을 하려고 했지만, 이 분들이 워낙 말이 많아서, 끼어들 틈 조차 없었다.


6. 솔직히 전반적인 논의들은 그렇게 의미 있지 않았다. 특히 비상경계열 전공하시는 분들의 피케티 예찬 절반. 금공 교수님들의 애스모글루 예찬 절반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모든 논의들이 전부 그런 것은 아니었고, 몇몇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하신 분들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애스모글루 예찬하느라 그것들이 다 묻혔다. 아마 발언하신 다른 분들 모두 공감할 것이다.


7. 그와 중에 ㅇㄱㅅ 교수님이 가장 재미있는 말들을 많이 했다. 단순히 우리과를 예찬하기 위함이 아니라, (상경계열 관련 책)에 대한 독서량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여러 경제학자들의 여러 서평들을 읽었지만, 그 서평들에서도 전혀 본적 없는 말들도 있었다. 그리고 금공 모 교수님에 대한 저격도 혼자 도맡으셨다. 다만 아쉬운 것은 확실히 관련 전공은 아닌지라, 몇몇 부분들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ㅊㅎㄱ 교수님이 오셨다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


8. 피케티를 지지하기 위함이 전혀 아니라, 단순히 수학덕후들은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날 수학만 하니, 토론이 이렇게 비생산적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쿠즈네츠 곡선에 대해서, 피케티가 비판을 했다고 해서, 쿠즈네츠 곡선이 쓸데 없다는 말이 아닌데, 당장 본문만 읽어도, 피케티가 자신의 공을 쿠즈네츠에게 돌리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 장황하게 쿠즈네츠 가 왜 쓸데 없다고 말하냐고, 장황하게 쿠즈네츠 예찬을 하고 있다. 이런식의 논의가 금공의 8할이다.


9. 오늘의 경험으로 피케티가 하는 주장 또는 그 심정의 일부분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케인즈의 주장과도 상동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회는 조야한 수식으로 환원할 수 없고, 무엇보다도 그런것에 매몰된 사람들에게 경제.불평등문제 를 내맡길 수 없다.


10. 피케티가 불평등(inequality)를 논하면서 그 이론으로 r > g 라는 부등식(inequality)으로 표현한 건 다분히 의도적일 것이다.ㅎㅎ


11. ㅇㄱㅅ 교수님이 금공 모 교수님을 공격하기도 했지만, 공격대상은 사실 피케티 예찬하는 인문대 분들이기도 했다. ㅇㄱㅅ 교수님은 폭로하는 걸 좋아하는데, 오늘도 한가지 폭로를 했다. "피케티 이걸 누가 읽느냐" 였다. 이 책은 대중용이라지만, 대중이 읽기엔 너무 쓸데 없기 장황하고 길다. 경제학자들용이라기에는 조야하다. 그리고 여기에 내생각을 살짝 추가하자면, 피케티는 꽤 자신감 넘치는 인물인지라, overshooting됐다고 생각한다.


12. 한편 케인즈의 <일반이론>은 경제학자들을 위해 쓰여졌다고 말하면서, 경제학자들을 깐다.


13. 근데, 웬걸, 모 교수님이, 나는 더 이상 담당 조교도 아닌데, 채점을 좀 시킨다. 200명 정도...... 흠..... 게다가 월요일까지........ 흠..................



[3]


피케티, <불평등경제> 읽기모임, 중간후기


0. 요즘 경제학설사 모임에서 피케티의 <불평등경제>를 읽고 있다. 진행을 꽤 느리게 하고 있는 관계로, 피케티 읽기 시작한지 한달이 지났는데, 이 얇은 책을 이제 절반 읽었다. 중간 후기를 쓰자면, 이렇다.


1. 피케티는 꽤나 독특한 이론을 펴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다. 포스트케인지언과도, 새케인지언과도 어딘가 거리감을 두는 것 같다. 그리고 익히 알려져 있듯이, 맑스주의와도 신고전파와도 거리를 둔다. 그러면서도, (<21세기 자본>에서 보면) 쿠즈네츠의 후예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도, 쿠즈네츠 곡선으로 상징되는 주류 발전이론에 대해 비판을 한다. 본문에 등장하는 것들을 찬찬히 살펴보아도, 주로 쟁점의 양극단을 소개하면서, 자신은 그 양자가 아닌 어딘가, 에 위치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그러면서도, 피케티가 양비양시론이 아니라, 긍정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지향점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그 지향점을 살펴보면, '세금'문제로 귀결된다. 피케티는 세금만이 오로지, feasible policy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3. 세금문제를 지적하면서, 피케티가 보이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자본주의 경제성장의 문제가, 세금과 같은, '정책', 나아가 정치에 따라 변동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보면, 피케티는 각국의 정치나 제도가 경제에 영향을 크게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런데 동시에 보면, 피케티는 여러 국가, 그리고 긴 시계열 데이터를 구성하면서, 말하자면 시공간의 종적 횡적 데이터를 구성하여 그것들을 비교하면서, 그 모든 차이들을 사상하고 (서로 비교 가능한) 아주 추상적인 경제관을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애쓰모글루가 피케티를 보고, 제도를 말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이와 같은 맥락인지, 그건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4. 3번과 같은 점을 염두한다면, 고전파와 케인즈 양자를 유비하면서 피케티를 읽는 것이 한단계 더 흥미롭다. 이 이야기는 예전에도 썼으니, 또 쓰기 귀찮다.


5. 번역, 편집 상태가 꽤 불만족스럽다. [모임에서 다수의 의견을 종합했을 때 꽤나 명료하게] 문장이 중간에 삭제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들이 발견되는가 하면,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심각하게' 방해할 정도의 오역들도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영역본이든, 원문이든, pdf파일을 구할 수도 없어서, 제대로 확인도 못했다.) 오타도 종종 등장하고, 대중서로 읽히기 위했는지, 저자가 아니라 편집자가 단 미주가 많은데, 대개 읽어도 읽을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경제학 입문자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