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하게 이루어진 이론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나는 나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따금 언급해왔던, 대단히 근대적인 관점에서의 시각이고, 말하자면 내가 프로테스탄티즘으로부터 물려받은 관념들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이다. 이 세계는 대단히 이기적인 세계이고, 나는 마르크스 조차도 그러한 시각으로서 이해하고 있다.

이따금 주위를 살펴보면, 신자유주의 속에서 세속적으로 혹은 이기적으로 생활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시선들을 발견한다. 물론 당연한 비판이다. 특히 개혁진영에서는 종종 이것을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나, 혹은 정보의 부족 등의 이유로 개인이 주어진 정보 내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더라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는, 게임이론에서의 딜레마를 상정한다. 물론 좋은 비판들이다. 특히 전자보다는 후자의 경우 나의 시선과 더 닮아있다. 다만 후자의 경우 구조에 대한 이해보다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기반한다는 점은 다소 불편하다.

하지만 나는 주체를 환상이나 착각에 사로잡힌 비합리적 개인으로 상정하는 모든 분석에 대해서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에게 주체는 매우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행위주체이기 때문이다. 사실 주체는 이기적인 주체라고 명명하는 일은 동어반복일지 모른다. 이기적이지 않은 주체가 세상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설사 효용곡선이 다른 주체들과 완전히 다를 뿐.

따라서 나에게 신자유주의 자기계발의 주체는 비합리적이거나, 혹은 환상에 사로잡힌 이들이라기보다는, 매우 합리적이고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해를 위해 행위하는 주체들이다. 또한 혹자들은 이러한 이들을 두고 '사회'의 파괴를 언급하지만, 사실은 사회의 파괴라기보다는 사회가 재구성되었을 뿐이리라고 나는 믿는다. 따라서 오늘날 달라진 것은, 사회의 구조가 외생적으로 달라진 것처럼, 이에 따라 균형점이 이동한 것이고, 이는 주체의 행위양식이 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내가 문제 시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자기계발의 주체가 가지는 비합리성이 아니라, 균형점의 유일성이 되는 것이고, 균형점이 유일하지 않는다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쓰다보니, 몇가지 지금 나의 주장들에 대해서 스스로 부족한 부분이 느껴진다. 하나는 지금 이러한 나의 주장들은 대단히 구조주의적이고, 더 나아가면 경제주의적으로 들리는데, 이것과 알튀세르 부류의 이데올로기 비판 사이의 차이가 있다고 느껴지는데, 이에 대해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발라와 마셜에 대해서도 봐야할 것 같다.

부족한 공부를 가지고 말해보자면, 주체이론, 이데올로기 이론의 등장은 경제결정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소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소외론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의 글에서 특이하게도 경제학에서의 균형이론과 주체결정이론을 마치 같은 것인양, 양자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처럼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경제가 주체를 결정한다는 경제결정주의라고 볼 수 있을 것같다. 내가 이러한 경제결정론에 강한 매혹을 느끼는 것은 이전에 다른 곳에서 쓴 바 있으니, 여기서는 우선 생략하도록 하자. 기회가 되면 이곳에 다시 한번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할 것이다.


균형의 유일성 문제를 거론하면 한가지 추가되는 문제점이 나타나는데, 단지 균형이 (이를테면) 한개가 아니라 두개이고, 주체는 언제나 합리적인 것이라면, 변혁의 문제가 역사적 과학적 당위를 담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회적 후생차원에서 혹은 권력관계에 의해서, 균형점 양자 사이에 하나를 선택하는 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