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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3일]
Velvet Underground - The Velvet Underground (US, 1969)
흔히 알려져 있듯, 밴드 Velvet Underground는 팝아트 미술가 앤디 워홀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은 밴드이다. 이들은 그의 '팩토리'에서 연습을 하였으며, 특히나 이들의 데뷔앨범은 그의 영향력이 상당하여, 보컬영입에서부터 음반자켓까지 그의 영향이 미쳤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유명한 '바나나' 앨범─앨범 자켓에 바나나가 그려져 있다─의 자켓을 앤디워홀이 직접 그려주었다고 하지 않은가. (앤디워홀이 직접 그렸다고 하는 이들의 남근이 떠오르는 바나나앨범 자켓과 롤링스톤즈의 입술마크, 모두 자본주의의 상투적 섹시함이 그대로 나타난다.) 사실 이들은 앤디워홀의 팩토리에 전시되어 있던, '아트 콜렉션'의 일부였다. 정확하게는 "앤디워홀의 팩토리와 그의 폭발하는·플라스틱·피할 수 없는 이벤트, 주변의, 뉴욕시의 하위문화 예술 콜렉션"의 일부였다.
이들은 'Max's Cansas City' 클럽에서 첫 데뷔공연을 갖는데, 이것은 이들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지녔다. 첫번째로, 이날 공연을 갖고서 클럽에서 몇푼의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빛도 발하지 못한 한 밴드맴버는 음악의 상업성을 탓하며 밴드를 탈퇴하였다. 두번째로, 이들은 이날 데뷔공연에서 팝아트 미술가 앤디워홀을 만났고, 그에게 전폭적인 후원을 약속받았다. 이들이 '뉴욕 아트 콜렉션'에 참여하게 된 것도 이날을 계기로 한 것이었다. (세번째로, 이들은 후에 Live At Max's Cansas City라는 라이브앨범을 발매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들은 앤디워홀의 작품처럼, '상품'과 '예술'을 경계로 두고 기묘한 줄다리기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 기묘한 줄다리기는 사실, '로큰롤 보이' 루 리드와 '전위 음악가' 존 케일과의 줄다리기이기도 하였다.) 이는 대중음악의 본질적 속성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으로 포장된 세계와도, 닮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대중음악처럼 결코 대중적인 사운드로 일관하지 않았다. 이들이 1967년 데뷔앨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을 내고서, 같은 해에 발매된 비틀즈의 최대 역작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을 비난하였는데, 비록 이들의 음반은 대중에게서 묻혔지만, 그것은 팝음악사상 가장 강렬하게 대비되는 구도였다. 이들은 <<Heroin>>과 같은 곡으로 마약을 이야기 하였고, <<Venus In Furs>>를 통해 에스엠 플레이에 대해 밝혔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차기앨범 <White Light/White Heat, 1968년작>의 <<White Light/White Heat>>이나 <<Sister Ray>> 등을 통해, 그들의 전위성을 계속해나갔다.
그리고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세번째 스튜디오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 1969년작>은 이들의 가장 대중적인 사운드의 앨범이다. Lou Reed와 함께 이들의 핵심적 축이었던 John Cale이 밴드를 탈퇴하고 난 후의 앨범으로, 모든 곡은 루 리드 홀로 작곡한 것들이다. 존 케일이 나간 후 실험과 대중성의 균형이 깨진 본 앨범은 마치, 그제서야 나타나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본 모습과도 같다. 이것이 이들의 본 모습이라는 것을 말하는듯, 앨범명도 이들의 이름 그대로, 셀프 타이틀이다. 그리고 그들의 속성은 바로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말끔히 사라진 노이즈처럼 추악한 자본주의 모습은 은폐되었고, 상업주의의 달콤함만이 남았다. 본 앨범의 첫번째 트랙이 <<Candy Says>>라는 것을 떠올려 본다면, 아마 나의 말을 이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