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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점에서 숱한 자기계발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말해주는 글을 짧게 인용할까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하였다. 자기계발이라는 문화산업은 우리가 이 자리에서 어떠한 인용문을 언급하지 않아도 이미 도처에 자리잡고 있다. 서점에도 학원에도 회사에도 카페에도 공연장에도 헬스장에도 있다. 다만 여기서, 자기를 문제시하고 이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이들의 지침이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나에게는 문제적이다.
서점에는 인간관계를 다룬 많은 지침서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인간관계의 기술》과 같은 책이 바로 그것이다. - 나는 이 책을 선정한 그 어떤 특별한 이유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단지 시중에서 잘 팔리는 책 한권을 골랐을 뿐이다. 이것은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주제어를 ‘인간관계’로 한 후, 판매량순으로 정렬하였을 때 가장 위에 있는 것이다. - 하지만 굳이 그 내용의 면면을 살펴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책을 예로 말하든, 비슷한 다른 책을 말하든, 그것은 아무런 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목을 인용하는 것 이상의 일은 불필요하다. 이들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성공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자신들의 지침 혹은 ‘성공’으로 이르는 인간관계 방법 같은 것이다.
물론 전자와 후자는 문법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자는 인간관계의 ‘성공’이고, 후자는 ‘성공’의 인간관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계발서에서의 인간관계론이라는 것은 후자가 아니라 전자, 즉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통해서, 만족스러운 삶을 얻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혹은 후자에서의 성공은 단지 물질적인 성공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내면의 만족을 추구함으로서의 성공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뿐이다. 나는 평가절하하겠다. 이는 은폐일 뿐이다.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 혹은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에서 물질적 성공 - 비록 그것이 빌게이츠나 이건희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 을 빼놓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그들의 모든 기호에서 이미 부에 대한 불만은 시사되어 있다. - 나는 왜 ‘그들’이 ‘성공’이란 낱말과 ‘행복’이란 낱말을 따로 쓰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들에게 성공이라는 것이 만족스러운 삶 같은 것을 뜻한다면, 두 단어는 결코 병기되지 않을 것이다. - 이에 대해서는 ‘성공학’에서 ‘자기경영’으로의 이동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자기경영이란 어디까지나 성공에 이르는 수단을 의미할 뿐이고 성공의 의미는 언제나 시사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관계의 여러 지침 역시 마찬가지이다. 타자와의 관계를 관리대상, 즉 자기성공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관계를 상품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말하고 싶다 - 관계는 도구가 아니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는 것’이라고.
- 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 돌베개, 2010, 참조
서점에는 인간관계를 다룬 많은 지침서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인간관계의 기술》과 같은 책이 바로 그것이다. - 나는 이 책을 선정한 그 어떤 특별한 이유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단지 시중에서 잘 팔리는 책 한권을 골랐을 뿐이다. 이것은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주제어를 ‘인간관계’로 한 후, 판매량순으로 정렬하였을 때 가장 위에 있는 것이다. - 하지만 굳이 그 내용의 면면을 살펴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책을 예로 말하든, 비슷한 다른 책을 말하든, 그것은 아무런 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목을 인용하는 것 이상의 일은 불필요하다. 이들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성공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자신들의 지침 혹은 ‘성공’으로 이르는 인간관계 방법 같은 것이다.
물론 전자와 후자는 문법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자는 인간관계의 ‘성공’이고, 후자는 ‘성공’의 인간관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계발서에서의 인간관계론이라는 것은 후자가 아니라 전자, 즉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통해서, 만족스러운 삶을 얻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혹은 후자에서의 성공은 단지 물질적인 성공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내면의 만족을 추구함으로서의 성공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뿐이다. 나는 평가절하하겠다. 이는 은폐일 뿐이다.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 혹은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에서 물질적 성공 - 비록 그것이 빌게이츠나 이건희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 을 빼놓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그들의 모든 기호에서 이미 부에 대한 불만은 시사되어 있다. - 나는 왜 ‘그들’이 ‘성공’이란 낱말과 ‘행복’이란 낱말을 따로 쓰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들에게 성공이라는 것이 만족스러운 삶 같은 것을 뜻한다면, 두 단어는 결코 병기되지 않을 것이다. - 이에 대해서는 ‘성공학’에서 ‘자기경영’으로의 이동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자기경영이란 어디까지나 성공에 이르는 수단을 의미할 뿐이고 성공의 의미는 언제나 시사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관계의 여러 지침 역시 마찬가지이다. 타자와의 관계를 관리대상, 즉 자기성공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관계를 상품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말하고 싶다 - 관계는 도구가 아니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는 것’이라고.
- 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 돌베개, 2010,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