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로 복학을 하였고, 요즘은 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 다음은 ‘거시경제학’ 강의를 듣던 중 있던 일이다. 교수님께서는 우리들은 더 이상 국내의 학생들과 경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학생들과 경쟁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말씀의 요지는 물론 우리는 전세계 사람들과 경쟁하고 있고, 한국의 학생들은 우수하니, 국내적 시각만을 가지고 낙담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이었다. 거듭 말하지만, 요지는 단지 그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불편하다. 인력시장에서 우리는 하나의 상품이 되어 팔려나가고, 판매되기 위하여 경쟁한다. 그것이 오늘날 ‘스펙’ 경쟁의 간결한 요약일텐데, 더 양질의 상품이 되면 더 비싸게 팔린다는 명제 속에서 숨겨진 것들이 있다. 나는 맑스를 인용한다.

   “…商品의 價値는 노동생산성에 反比例한다. 勞動力의 價値도 역시 노동생산성에 반비례한다. 왜냐하면 노동력의 가치는 상품의 가치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相對的 剩餘價値는 노동생산성에 正比例한다. 그것은 노동생산성의 증가에 따라 증가하며, 그 저하에 따라 저하한다. 화폐가치가 불변이라면 12시간이라는 사회적 평균노동일은 항상 72원이라는 동일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데, 그것은 이 가치총액이 賃金과 剩餘價値로 분할되는 比率 여하와는 관계가 없다. 그러나 만약 노동생산성이 증가된 결과 생활수단이 가치가 저하하고 따라서 노동력의 하루 가치가 60원에서 36원으로 떨어진다면, 잉여가치는 12원에서 36원으로 증가할 것이다. 노동력의 가치를 재생산하는데 이전에는 10노동시간이 필요하였지만 이제는 다만 6노동시간[72원:12시간=36원:6시간]이 필요하다. 4노동시간이 유리되어 잉여노동의 영역에 편입될 수 있다. 그러므로 상품을 값싸게 하기 위해 그리고 상품을 값싸게 함으로써 노동자 자체를 값싸게 하기 위해,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키려는 것은 자본의 內在的 衝動이며 끊임없는 傾向이다.” (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 《자본론1-上》, 비봉출판사, p.407-408)

   자본은 상품의 절대적 가치에는 관심이 없다. 자본이 관심갖는 것은 오로지 잉여가치뿐이다. 그리고 그 잉여가치의 무한한 축적을 위해 자본은 임금을 ‘절약’할 것이고, 그것은 자본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충동이며, 끊임없는 경향’이다. 마지막으로, 당신께서는 우리가 상품을 매개로 외국의 인적자본(노동)과 만나고 있고 경쟁하고 있다며, 자유로운 인적자본의 이동을 말하였지만, 당신께서도 알고 있듯, 자유로운 것은 인적자본이 아니라, 자본이며, 우리는 인적자본이 아니라 노동자로서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