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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공부’
공부를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는 묻는다. 무슨 공부를 할 것이냐고. 그럴 때면, 나는, 영어공부를 할 것이라고 대답하거나, 대답을 회피한다. 이글은 너에게 넷북을 사고 싶다고 말하던 날 밤에 씌어진 것이다. 너는 낮에 내게 물었다. 넷북을 사고 싶다던 나에게, 넷북으로 무슨 공부를 할 것이냐고. 사실 오늘이 처음이던가, 이런 일이 있던 것이. 사실, 너도 나도 이 뻔한 것에서 왜 자꾸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사실 답답하다. 너가 무슨 공부를 할 것이냐고 묻는 이유는, 아마도 공부를 하라고 부담을 주기 위함이겠지. 이 부담이 필요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늘 답답하다. 너도 나도 뻔한 물음과 답변을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자꾸 무슨 공부를 할 것이냐고고 묻는 것에서, 나는 좀처럼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렇다. 말하자면 이렇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는, 그것이 무엇인지 나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공부를 하고 싶은 것이지, 자격증을 따고 싶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이 공부의 가장 바른 표현이다. 공부란, 단지 어느 시험을 목표로 한 것만이 공부가 아니지 않은가. 설사 세상이 두집혔대도, 나는 그것도 모르고 혼자 물구나무를 선대도, 적어도, 공부란 어느 시험을 목표로 한 것만이 공부가 아니다. 이래도, 나에게 무슨 공부를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사회학, 철학, 정치경제학, 미학, 글쓰기(작문), 기호학, 윤리학을, 뭐 그런 것을 공부하겠노라고, 말이다. 결국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아는 한, 학문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진리에는 대상이 없다. 진리에는 명확한 대상을 상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도 내가 무엇을 공부하려는 것인지, 나도 모른다. 다만. 우리에게는 세계를 적절히 해석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 지혜 없이 세계를 인식할 수 없다. 그것 뿐이다. 너는 나를 아주 특별한 종자로 취급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내가 늘 말하는, 너에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는 이유가 바로 그곳에 있을 뿐이다. 네가 본 세계에서 나는 아주 특별한, 이상한 종자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본 세계는 다르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래서 늘 맑스가 아니라, 그저 다른 세계였다.
공부, 결국 우리는 다시 어린 아기로 돌아가야 한다. 놀고, 만지고, 그리고, 기고, 읽고, 쓰고, 잠자는 그 모든 것들이 순전히 공부로 이해될 수 있었던 그 때로 말이다.
2011.6.21. 너의 연인이.
공부를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는 묻는다. 무슨 공부를 할 것이냐고. 그럴 때면, 나는, 영어공부를 할 것이라고 대답하거나, 대답을 회피한다. 이글은 너에게 넷북을 사고 싶다고 말하던 날 밤에 씌어진 것이다. 너는 낮에 내게 물었다. 넷북을 사고 싶다던 나에게, 넷북으로 무슨 공부를 할 것이냐고. 사실 오늘이 처음이던가, 이런 일이 있던 것이. 사실, 너도 나도 이 뻔한 것에서 왜 자꾸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사실 답답하다. 너가 무슨 공부를 할 것이냐고 묻는 이유는, 아마도 공부를 하라고 부담을 주기 위함이겠지. 이 부담이 필요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늘 답답하다. 너도 나도 뻔한 물음과 답변을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자꾸 무슨 공부를 할 것이냐고고 묻는 것에서, 나는 좀처럼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렇다. 말하자면 이렇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는, 그것이 무엇인지 나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공부를 하고 싶은 것이지, 자격증을 따고 싶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이 공부의 가장 바른 표현이다. 공부란, 단지 어느 시험을 목표로 한 것만이 공부가 아니지 않은가. 설사 세상이 두집혔대도, 나는 그것도 모르고 혼자 물구나무를 선대도, 적어도, 공부란 어느 시험을 목표로 한 것만이 공부가 아니다. 이래도, 나에게 무슨 공부를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사회학, 철학, 정치경제학, 미학, 글쓰기(작문), 기호학, 윤리학을, 뭐 그런 것을 공부하겠노라고, 말이다. 결국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아는 한, 학문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진리에는 대상이 없다. 진리에는 명확한 대상을 상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도 내가 무엇을 공부하려는 것인지, 나도 모른다. 다만. 우리에게는 세계를 적절히 해석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 지혜 없이 세계를 인식할 수 없다. 그것 뿐이다. 너는 나를 아주 특별한 종자로 취급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내가 늘 말하는, 너에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는 이유가 바로 그곳에 있을 뿐이다. 네가 본 세계에서 나는 아주 특별한, 이상한 종자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본 세계는 다르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래서 늘 맑스가 아니라, 그저 다른 세계였다.
공부, 결국 우리는 다시 어린 아기로 돌아가야 한다. 놀고, 만지고, 그리고, 기고, 읽고, 쓰고, 잠자는 그 모든 것들이 순전히 공부로 이해될 수 있었던 그 때로 말이다.
2011.6.21. 너의 연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