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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약간 있습니다.)
“혜화, 동”,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이 영화를 보고서 얼마나 글을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과연 내가 제대로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화는 현재 ‘혜화’의 모습과 과거 ‘혜화’의 모습을 번갈아 가며 보여준다. 스물셋의 성숙한 혜화와 고등학생의 천진한 혜화는 삭제된 장면을 사이로 두고 혜화의 상이한 단면들을 보여준다. 스물셋의 혜화와 고등학생의 혜화의 어떠한 단절을 말하면서, 그 단절 사이에 어떤 장면이 삭제되어 있고, 구성되고 있는 주변의 이야기들은 어떤 관계들을 가지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은 채, 혜화는 유기견을 찾아다니고, 한수는 아이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사건의 조각들은 천천히 조립되어 간다. 한수와의 결혼이 좌절되고서, 혜화는 키우던 개 ‘혜수’와 그 새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고, 기르던 손톱까지 자른다. 그날 이후로 모아왔던 혜화의 손톱들은 어쩌면, 고등학생의 혜화와 스물셋의 혜화를 사이를 잇고 있는 매개물이다. 마치, 오늘은 과거의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필름, 즉 과거의 기억들이 담겨있어야 할, 필름통에는 필름 대신에 혜화, 그녀가 간직하고 있는 상처, 즉 그녀의 손톱이 가득 담겨있었던 것이다. 마치 과거와 현재는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사실, 과거와 현재를 매개하고 있는 것은 비단 그녀의 손톱뿐만이 아니다. 손톱, 아이, 강아지까지, 모두 오늘의 그녀를 매개하는 과거의 화신들이다. 불현듯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탈장한 유기견은 현재의 평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환영을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탈장한 유기견이 진짜 그녀가 기르던 혜수의 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불현듯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그 개를 좇는 그녀는 마치 자신의 자아를 찾는 것과 같은 환상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무척이나 성숙해 보이는 혜화의, 영화의 초입부, 수의사의 말처럼 ‘자각증상이 거의 없으니까, 탈장이 됐는지 어쨌는지 지들도 잘 모르’는 그녀 자신의 상처 입은 자아를 좇는 것 말이다.
결국, 아이는 죽었다. 아이가 죽는 날의 그 지점이 고등학생의 혜화와 스물셋의 혜화 사이의 매개였고, 혜화가 간직하고 있었던 상처였고, 바로 그 사실을 받아드리는 것이 성숙함과 미숙함을 규정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성숙함은 어딘가 미숙해 보이는 한수의 모습에 비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데, 영화의 후반부, 혜화와 한수가 다투는 장면에서 이 지점은 도드라진다. 모든 사실을 알고서도 아이의 죽음을 받아드리지 못한 한수와 한 때, 한수를 따라서 아이가 죽지 않았다고 믿었지만, 결국 아이의 죽음을 인정하게 되는 혜화와의 차이가 바로 이 지점인 것이다.
‘인정하기 싫다고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거, 아니잖아’, 한수와 다투면서, 혜화가 외친 말이다. 이 말을 외치고서, 한수와 혜화 앞에 탈장한 개가 나타난다. 마치, 아이의 죽음을 인정하고서야 그녀 앞에 나타난 그녀의 상처 입은 자아처럼 말이다. 그리고 상처입은 자아를 만나고서야 그녀는 한수에게 담담하게 말한다. ‘인사해, 혜수 딸이야.’라고 말이다. 영화의 결말은 반쯤 열린 상태로 마지막을 맞는다. 탈장한 개와 그녀의 새끼들을 차에 실고서, 혜화는 떠난다. 하지만, 혜화의 자동차 백미러로 한수의 모습이 밟히고, 혜화는 천천히 기어를 'R'에 두고 패달을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