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어린 아이가 되고 싶다. 장롱문을 열고 들어가면, 쪼그리고 훌쩍이는 어린 나를 안고 싶다. 나는 언제나 그런 생각을 한다. 나의 방, 내 방의 장롱, 어두컴컴함. 그런 생각을 하니 우울하다. 우울해서 술이나 마시고 싶다. 이 사회는 술을 잘 마셔야 한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면 사회에 적응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그래도 술을 마시고 싶다. 사실 이 사회가 그렇다. 언젠가는 바람이 되고 싶었다. 자유롭고 싶었다. 그래서 바람이 좋았다. 바람은 자유롭게 날 수 있었으니까. 또 언젠가는 별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반짝이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은 내게 은빛 연어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참 좋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반짝이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또 언젠가는 오아시스가 되고 싶던 적도 있었다. 왜냐하면 누구의 눈물이든, 대신 울어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위선자기 때문이다. 이기적이다. 나는 나를 긍정할 수단이 부족했다. 나는 아주 어릴적부터,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였고, 친척누나들이 여장시켜주는 것을 좋아해하였다. 활달한 척 한다거나, 소탈한 척, 즐거운 척 하는 것은 사실 나의 방어기제이다. 나는 나의 내면을 보호해야 하니까. 그래, 나는 자의식 과잉이다. 그리고 자존감도 떨어진다. 나는 나의 뒤떨어지는 자존감을 나의 과잉된 자의식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뒤떨어지는 자존감을 나는 나의 과잉된 자의식으로 대체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의 풍성한 내면을 키워왔던 것이다. 예전에는 그냥 심장이나 기증하고 생을 마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좋은 일도 하고, 편안히 안락사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것이 법적으로 허락된다면,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정말 많을 것 같다. 한 때는 신학교에 갈까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사실 나는 모태신앙이다. 나의 아버지는 집사고, 나의 어머니는 권사이다. 그래도 이 땅에는 돈이 없어도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 직위를 준다. 꼭 직위를 돈으로 사고 파는 것은 아니지만, 으레 돈이 많으면 직위를 얻기란 쉬워진다. 인맥도 많을테고, 그만큼 헌금도 내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교회를 그렇게 다녀도 번번히 장로가 되지 못한다. 이유는 나의 아버지는 교회에서 분쟁을 많이 일으키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주 원리원칙을 중요시 여기신다. 하지만 수꼴이다. 하지만 나는 요즘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더러운 분당 부르쥬아 교회에 선 신은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가난한 민중 앞에 서있는 신을 보고 싶다. 이 시대의 교회가 숭배하는 것은 맘몬이다. 어머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머니는 그래도 돈은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어머니는 내가 가난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사실 나도 부유하고 싶다. 돈이 존나 싫지만, 부유하고 싶다. 길게 쓰고 있지만, 문단 구분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 글은 순전히 글이 아니라, 말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까, 예전처럼 다시 일기를 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좋다. 눈물을 많이 흘리고 있지만 그래도 좋다. 다시 장롱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다시 자궁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이따금 말한 적이 있었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혁명이 아니라, 탈주를 꿈꾼다. 나는 민중해방이 아니라, 나 자신의 해방을 꿈꾼다. 나만 행복할 수 있다면, 혁명 따위 관심 없다. 그냥 혁명이고 사회고 나발이고 그냥 탈주하고 싶다. 나만의 꼬뮨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살고 싶다. 나에게 꼬뮤니즘이란 사실 그것이다. 지금은 그 무엇도 꿈꾸고 있지 않지만, 예전에는 정말 간절히 나만의 카페를 꿈꾸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예전에 어떤 아이에게 몇번이고 말한적이 있었는데, 그 아이는 그것이 마음에 안들었던 모양이다. 말이라는 것은 언제쯤 끝이 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말하는 주체이다. 오래전 심리학에서는 내성법이라는 기법으로 사람의 심리를 파악했었다. 차분한 상태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써내려가는 것이다. 좋아하는 영화가 한두개는 아니지만, 구스 반 산트의 파라노이드 파크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 영화에 보면, 한 아이가 주인공에게 그런 말을 한다. 누구에게든 편지를 써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