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일기의 일부분을 발췌하여야겠다. 나는 오늘자 일기의 앞부분은 이곳에, 뒷부분은 다른 블로그에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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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0월 30일 일요일 - 2

   지금은 새벽 3시, 혼자서 영화 ‘써니“를 보았다. 내가 영화 비평이라는 것을 할 만한 입장은 되지 못하고, 대신에 간단한 감상을 이야기 해야겠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그럭저럭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부산스럽고, 불편했다. 인물들은 80년대 복고풍의 정서만큼이나 부산스러웠고, 당대의 시대를 묘사하면서 이따금 등장하는 학생운동이 희화화되는 것은 상당히 불편했다. 그것은 꽤 자주 일어났다.

   또한 클로드 피노트 감독의 ’라붐‘을 본받은 듯, 리차드 샌더슨의 리얼리티는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였고, 파티장에서 헤드폰을 씌워주는 ’라붐‘에서의 장면은 ’써니‘에서도 그대로 연출되었다. 주인공 나미는 급기야 카메라에 대고, 자신을 소피 마르소와 닮았다고 소리를 지르기까지 한다. 오마주는 한번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영화 한편에서 열댓번은 본 것 같다. 그냥 ’라붐‘ 한국판이라고 말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말하자면, 어른 나미, 즉 한국의 중상층 여성 나미의 정서는 청춘 영화 ’라붐‘을 통과하여, 모든 것을 몰계급적이고, 상투적인 배경을 연출하였다. 인위적으로 보일 정도로 삭막한 중상층 가정은 딸아이는 맥 컴퓨터를 쓰고, 아내는 수백원씩 남편에게 용돈을 받으며, 친정 어머니는 샤넬 백을 받으며 자랑을 한다. 기사까지 쓰고, 기사에게 친절하게, 원래 시내는 막히는 거라고 지시하는 사모님은 얼마가 들었는지, 흥신소에서 돈을 써가며 자신의 옛 친구들을 찾고, 어찌어찌 만난 친구들은 결국 사장님 소리를 듣는 춘화가 남긴 어마어마한 유산을 나누어 갖는 것으로 끝이 난다.

   나는 이 모든 내러티브가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조롱하고서 중상층의 시혜적 시각으로 여전히 불평등과 착취로 만연한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노동자를 능욕하는 일련의 서사로 느껴지는 것은 왜인 것일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영화에서 어떠한 감동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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