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8일]


바빠서 긴 글을 남길 수는 없을 것 같다.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그리 치열하게 공부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특히나 주류경제학, 즉 현대경제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경제학의 그 수학적 모델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그 정교함에 놀랍고, 또 흥미로운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럴 때면은 현대경제학의 과학성에 대한 고민을 옅게나마 해보고는 한다. 정교한 수학적 모델을 통해 발전해온 현대경제학의 기틀은 단지 가치론과 같은 난망한 이론 혹은 신앙을 근거로 기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현대경제학의 그 부르주아 특유의 편협한 과학관에도 진리성을 담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한편으로 수학화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부여받았고, 그것은 한때 성실히 이행되었다가, 크게 좌절되었다. 그것은 가치론의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과학성이란 무엇을 지칭하는 말인가,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은 무엇을 근거로 호칭되는 것이며,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가. 현대경제학에서 과학성이란, 정교한 수학적 모델을 통해, 내생변수와 외생변수를 구분하고, 철저하게 고안된 모델 안에서 그 진리성은 도출된다. 또 한편으로는 외생변수의 내생화를 통해서 모델의 설명력을 높이도록 부단히 모델개발이 이루어진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도 모델의 고안을 통해서 세계를 설명한다는 것에서는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과학관과 최소한의 수준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통상, 그것을 변증법이라고 부른다.


다만 차이점은 상당하며, 또 명백하다. 가장 큰 변별점이라는 것은 마르크스의 방법론은 내생변수와 외생변수에 대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의 대상이란, '경제'라고 하는 철저하게 고안된 순수한 그 무엇이라기보다는 특수한 시대의, 특수한 생산양식, 즉 자본주의라고 하는 매우 특수한 형태의 역사적 대상의 그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 역시 상당부분 이것을 고안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에게 정치경제학 비판이란 자본주의 비판을 위한 가장 거대한 하나의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마르크스의 대상은 초역사적인 시장이라는 추상적 형태라기보다는, 역사 그 자체이며, 역사를 추동하는 힘에 대한 역학을 그 분석의 핵심으로 본다. 그리고 그러한 논리에 따라 당파성이란, 과학성을 담지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과학에 대한 얼마나 불순한 말이던가.


또 하나는 마르크스의 그것은 현대경제학과는 달리 하나의 기획으로 존재하기에, 가정에 대한 의심은 금기시된다. 이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약점일 것이다. 때문에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은 가치론,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출발한 공황론, 그것에 자신의 목숨을 바꾼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특징은 이러한 마르크스의 이론이 가지는 특징은 세계에 대한 심층과 표층을 구분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가치의 세계와 가격의 세계를 구분하고, 추상에 정도에 따른 세계의 심층과 표층을 구분하는 것에 이론적 생명을 담는다. 부르주아 과학관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된다. 그들은 가장 표층적인 것에 대한 이해를 이론의 목적으로 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주류경제학과의 논쟁에서 가장 신랄하게 비판받아온 것이고, 때로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의 이론은 메타과학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