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9일]


조금 전에 유모 교수에게서 괜히 낯뜨거운 답장을 받았다. 내가 지난 시간에 설친 탓이다. 물론 내가 반쯤은 나도 의도하지 않은 것이었다. 유모 교수에게 질문하였던, 혹은 사실 상 반박하였던, 칼 폴라니에 대한 물음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는데, 이는 교수의 책임도, 나의 책임도, 폴라니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졸음이 쏟아지는 통이라, 길게 더이상 사설을 쓸 수는 없겠다. 폴라니에 대해서 내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은 차후로 미루도록 하자.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독해에 대한 것이다.


유모 교수는 폴라니에 적대적인 내게, 내재적 독해를 권유하였는데, 그의 그러한 조언은 나에게 다소 화끈 거리는, 부끄러운 질타처럼 느껴졌지만, 전적으로 동의하는 내용이다. 사실 그것은 루트는 달랐지만, 정모 교수가 내게 권유한 방법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공부를 한다는 것은 모두 같은 것인가 보다. 그래서 그럴까, 나도 오늘 손모 군에게 같은 권유를 했다.


공부라는 것은 결국 자기만의 물음을 던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인 것 같다. 지긋지긋한 학부생 연구 사업이 내게 남긴 것이 있다면, 자기물음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Report Proposal의 중요성에 대해서 각인시켜 준 것 같다. Report Proposal에 대해서라면, 내가 그것을 못해서 지금껏 이렇게 생고생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이나, 자기물음을 갖는 것에 대한 것이나, 결국은 질문을 하는 일에 대한 것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잘해야 한다.


사실 단지 학부생 연구 때문인가. 사실 아니다. 자기만의 물음을 찾으라는 말은 사실 작년 정모 교수와 따로 튜터링을 할 때부터, 지겹게 듣던 말이 아닌가. 아마도 내 인생사적으로, 내 경험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내게도 자기질문이 존재했겠지만, 그것이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의 차원으로 건너온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눈이 점점 감기는 탓에 기억도 유난히 더 가물가물한데, 아마 길게 잡아봐야 올해 6월, 짧게 잡으면 8월 즈음부터인 것 같다. 그때부터, 자기물음에 대해서, 혹은 방법론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의식의 차원에서 넘어온 가장 핵심적인 계기는 첫째로 Report Proposal을 작성하는 과정이었고, 둘째로 이모 교수를 따라간 여름 학술대회에서 만난 전모 교수가 마르크스를 왜 배우냐고 물었던 질문이었고, 셋째로 올해 여름방학 동안 양적으로 그리 많진 않지만 학부생 연구 차 했던 독해법에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성찰적 작업들이 다행스럽게도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일들이었기에, 단지 그것들이 의식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물론 이 모든 작업들이 바쁘다보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소홀하다. 오랜만에 블로그를 새로 만들어서, 글을 쓰면서, 사실은 제법 바쁜 와중에도 의욕적으로 글을 자주 남기고 있다. 바쁠수록 딴짓을 하고 싶어서 였을까. 나는 이 반성적 작업들이 좋다. 내가 밤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가장 좋은 추억은 바로 이 반성과 성찰에 대한 경험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