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7일]


나의 거지 같은 연구 에세이가 마침내, 교수의 손을 떠났다. 물론 내 손에서도 떠났다. 교수는 내 연구 에세이를 결국 통과시켰다. 내심 예상했지만, 바라지 않았던 것이었다. 나의 거지 같은 연구 에세이를 만인들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사평은 내 예상 그대로 였고, 나도 교수가 지적할 내용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연구의 한계점으로 미리 지적하였다. 집에 돌아와서 적당히 연구 에세이 발표 준비를 끝내고, 다른 발표자들의 주제들을 훑어보았다. 역시, 그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 너무나 싫다. 창피하다.

 

철학 교수답게 그동안 이리저리 이야기하던 것들이, 다 끝내고 나니까 무슨 이야기인지 구체적으로 알겠다는 생각이다. 왜 미리 그것을 몰랐을까 싶다. 다른 이들을 보니,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였다. 나는 앞으로 formal한 방법과 형식이 무엇인지 배워야 할 것 같다. 결국 나에게 조언하고 권고했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모두 같은 말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무턱대고 거대서사를 이야기하였다. 백과사전식 지식을 자랑하며 나의 얉은 공부를 뽐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학제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지식인을 되는 일이 아니라, 전문인을 되는 일이다.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 사이의 긴장감 그 자체는 건전하고 바람직한 것이지만, 어쨌거나 전문인이 되는 과정이라는 것, 그 주는 지식인이 아니라 전문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소설가가 아니라, 학자를 원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그 긴장감 자체에 대해서 고민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모호한 말이라, 아직 정리해서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뭐, 쌓아둔 일이 많지만, 그래도 잠시 여유가 생겼더니, 자꾸 다른 일을 벌리고 싶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보나마나 11월에도 나는 분명히 바쁠 것이니까, 이번에는 조금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이도저도 아닌 것보다는, 작더라도 하나는 확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아무 것도 안해도 좋긴 하지만 말이다.

 

과제 차 수행해야하는 꽤 비중있고 분량 있는 레포트가 크게 두개가 일단 주어져 있다. 하나는 국제금융론이고, 하나는 경제성장론에서다. 경제성장론에서는 주제가 정해지지 않았고, 국제금융론에서는 07-09년 미국 경제위기를 주제로 잡았다. 그리고 시간나면 하고 싶어서, 커리큘럼을 짜본 노동가치론이 있다. 뭐, 그 밖에 다른 과제도 있겠고, 세미나도 자본론 세미나, 마르크스 원전읽기 세미나도 있지만, 딱히 연구로서의 문제들은 아니다.

 

지난 학기 즈음부터 생각하던 것이고, 요즘들어 더 생각하는 것인데, 내가 하는 일이 많은데, 여기에서 어떤 긴장감을 유지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전공만 해도, 경제학, 사회학 두가지고, 여기에 맑스올로지, 철학, 미학, 세미나들, 개인공부들, 이것저것 많고, 나는 이 모든 일들을 전부 다 잘해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이것들이 서로 상이한 형태와 주제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것들을 일원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애시당초 주제를 선정하거나 하는 일에서 유사점을 갖겠금 하고, 또 한편으로 그 상이한 내용들 사이의 관계를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다시 앞서 언급했던 지식인과 전문인 사이의 긴장과도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대단히 주절주절 헛소리를 하고 있는데, 그래서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혼자 고민하고 공부할 수 있는 작은 주제를 하나 설정해서 여유시간에 개인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애시당초 설정했던 노동가치론은 대단히 주제가 크다는 생각이다. 그 작은 주제를 설정해서 공부하는 일이, 한편으로는 내가 수행하는 여러 일들의 보충이 되었으면 좋겠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질문할 근본적 질문에 보템이 되기를 희망한다. 시간이 늦어서 더 적지는 않겠지만, 마인드 맵이라도 혼자 그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