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8일]


1

 

비정규직 노동자대회를 끝마치고, 새벽 두시, 잠자기 전 글을 쓴다. 어제는 많은 일이 있었다. 먼저 아침에 예정되어 있던 화성 답사를 핑계대고 가지 않았다. 간밤에 늦게 잤더니, 그 피곤함에 그 쓸모 없는 화성 답사가 너무 가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수업 대신에 이루어진 답사였는데, 내 점수가 어떻게 좀 깎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른 일정이 없었다면 모를까, 일정도 많은데 피곤함을 무릎쓰고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 두 시간 정도를 더 자고서, 사촌 누나의 결혼식에 갔다. 그곳에서 사촌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놀라웠던 것이, 우리 형을 필두로 그곳은 모두 나꼼수 일당들이었다. 희화화된 박근혜와 함께 문재인과 안철수가 서로 경합하는 그 정치 담론의 자리라니. 청년 대중들의 현 실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싶었다. 박모군에게 주변 지인들에게 자신의 정치색을 어떻게 나타내는지, 한번쯤 물어봐야할 듯 싶었다.

 

하지만 아마도 이러한 형국은 진보좌파의 진영의 그 지리멸렬함 때문이라는 점은 분명할 것이다. 사실 냉소보다는 자조를 해야할 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오가지 못하였지만, 그와중에도 내가 꽤 놀란 점은, 그들은 엔엘도 피디도, 여러 난립한 정당들의 존재도, 알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알고 있었음에도, 진보좌파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사실,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걸지 않는다는 것이 아닌가.

 

또한 사실 노동자 민중 후보가 누구다, 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점은 선거라는 국면에서 발언권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다시 묻는다면, 그렇게 대응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아니, 정치란 것이 고작 우두머리를 선택하는 일이었던가.

 

2.  

 

다음 장면은 비정규직 노동자대회가 시작하기 직전 서울역의 풍경이다. 나는 약간 일찍와서 서울역 주변을 괜히 배회하고 있었다. 당시는 대회가 시작되기 전, 무대준비가 한창이었고,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 조합원 분들이 준비된 퍼포먼스를 위해 민중가요에 맞춰 몸짓을 연습하고 계셨다. 그리고 그것을 보던 한 여성이 자신의 친구에게 몸짓연습인 곳을 가르켰고, 그 친구가 말하였다.

 

"시발 지랄들하고 있네"  

 

사실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분노하게 만들었을까. 집회를 하는 것이 그녀를 화나게 한 것일까? 몸짓을 추는 모습이 그녀에게 대단히 하찮게 여겨졌을까. 하찮고 무시받는 존재들이 몸부림치는 일이 무용하고 꼴깝처럼 보였을까. 아마 어느 듣도 보도 못한 거리의 댄서가 그곳에서 춤을 연습하고 있었다면, 분명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내가 좀 더 패기있고 막나가는 아이였다면, 그 여성에게 소리라도 고래고래 질렀겠지. 

 

항상 집회나 시위를 할 때면, 주변의 '시민'들, 그 '일반' 시민들이라고 불려지는 사람들은 우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사실 지금도 경찰과 대치하며 구호를 외치던 그때, 그 거리를 지나던 바로 그 '시민'이라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 죽겠다. 사실 그곳의 전선이라는 것은 시위대와 경찰대오가 아니라, 노동자와 시민 사이의 전선이었을 테다. 노동자도 시민일테고, 시민도 분명히 노동자일텐데, 노동자와 시민 사이의 전선은 왜 그리도 견고하고 깨어지지 않는 것일까.

 

사실 나는 민중가요를 부르는 일도, 구호를 외치는 일도, 행진을 하는 일도 꽤 좋아한다. 하지만 거리에서 그 일들을 할 때마다, 내가 대치하고 있는 것은 사실 경찰이라기보다는, 바로 그 시민들이었다. 경찰과 격렬한 대치를 해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대오를 막는 그 경찰들도 내게는 그저 시민들이다. 경찰과 대치를 하면서도 나는 그 경찰시민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런 고민을 가진다. 그래, 언제인가 방모군이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떤 맥락에서 그런말을 했는지 솔직히 말해서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아마 그 전선은 바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오래 전부터 좋아하던 한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그곳에서 시인은 벽과 벽이 부딛혀서 벽이 샛강처럼 금이 나면, 그곳이 핏줄과 핏줄이 되어 엉겨붙어지는 것이라고. 대충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3.

 

사실 작년 비정규직 노동자대회에서, 나의 연인을 보았던 기억이 나서, 그 기억이 점점 흐릿해지지만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대회에 참여하는 일이 꽤 즐거웠다. 그래서였을까, 어째서였을까, 오늘 그녀가 내 옆에 오자, 그 얼굴빛이 그렇게 맑고 고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손을 잡고서, 몰래 몰래 그녀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이마부터 해서, 그 콧날, 그리고 입술, 턱선. 꼬옥 잡고 있는 손도 참 보드랍고 따듯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면, 심장이 두근두근 거린다. 뜬금없이 연애편지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선 글을 마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