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일]


며칠 전은 그동안 한 작업들을 발표하는 날이었다. 나는 그 발표가 몹시 창피했었는데, 왜냐하면 나의 결과물이 너무나 거지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내가 기회를 얻어서 한다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꽤나 무기력감을 느낀다. 오늘은 그 발표 결과가 나왔는데, 장려상을 형식적으로 수상하기는 하였지만, 순위로서는 거의 꼴찌에 해당했다.

 

사실, 나의 거지같은 결과물을 그 주류 사회과학에 매몰된 사람들 앞에서 발표한다는 것에서 나는 대단히 발표 전날부터 위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발표의 현장에서도 그들은 실험에 입각한 명료한 사회과학 방법론을 구사하였고, 발표도 마치 면접을 직접 보듯이 준비된 모습으로 임하였다. 그에 반해서 나는 옷도 대충 입고서, 발표 자료도 대충 만들고서, 딱히 준비된 대본도 없이 적당히 떠들다가 나왔다. 사실 그런 내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상을 탈 가능성도 희박했던 것도 있지만, 나는 그 발표문화도 싫을 뿐더러, 그들과 동화되고 싶지 않았다.

 

지도교수는 발표가 끝난 후, 내가 너무 저자세였고, 나의 연구에서 장점을 부각시키지 못하였다고 아쉬워하였다. 사실 어짜피 내 에세이 논문도 읽어볼 사람들이 아닌데, 확 내용을 재구성해서 명료하게 발표를 했었다면 어떘을까 싶은 생각도 들긴 한다. 좌우간. 사회과학이 무엇인가 싶다. 아니, 그보다 과학이 무엇인가.  

 

사실 굉장히 주절거리고 있지만, 나를 가장 상처를 준 것은, 한 여교수의 애정어린 시선이었다. 심리과의 그녀는 나에게 왜 그 연구에 관심이 갔는지, 그 개인적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 대단히 사적인 질문을 공적인 석상에서 질문받는다는 것이, 나로서는 대단히 수치스러웠다.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착취에 대해서, 소외에 대해서, 말하는데, 왜 하필 그것이 궁금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우리집이 IMF 때 폭삭 망하고 가난하게 살면서 소외감을 느끼고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눈물이라도 흘려야 했던 것인가.  

 

그녀는 내가 (거지 같은) 연구 결과물이 아니라, 나 자체가 대단히 흥미로웠겠지. 하지만 이것이 무슨 무례란 말인가! 술자리에서도 말하지 않을 그런 것들 말이다. 자기 전공하고도 딱히 관련 없는 내용들을 몇시간째 듣고 있다가, 내 이야기에 제법 흥미로웠겠지만, 나는 대단히 그녀가 불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