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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7일]
요즘 잉여로운 삶을 살고 있다. 슬슬 다시 일어나야 할텐데 말이다.
사회과학에 대한 공부를 하노라면, 심리학은 언제나 매우 이질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런 나의 편견은 전혀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그동안 편견처럼 가지고 있던 심리학에 대한 인식이 이래저래 공부를 하다보면 전혀 꽤 잘 들어맞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실 심리학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개강을 하면 그래서 심리학을 전공하는 후배들에게 심리학개론 책 한권을 좀 보여달라고 할 요량이다. 좌우간 나는 심리학과 경영학이 싫다. 그것들은 사회과학이라고 불리기에는 매우 다른 것들이라고 믿는다.
인류가 발전시킨 지식의 체계들은 매우 고도화된 형태로 체계화되고 있다. 흔히 그리스의 철학에서부터 소급하는 바로 그것, 말이다. 특히 근대에 오면서 그것은 매우 분업화된 형태를 지니게 되었는데, 이는 다양한 분과학문, 다시 말해서 과학이라는 형태로 분화되었다. 물리학, 생물학, 화학에서부터 경제학, 정치학, 심리학, 사회학, 그리고 역사학, 철학, 어학과 문학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우리는 흔히 그것을 다시 세가지 범주로 구분짓는다.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묘한 긴장감을 준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사이에 끼어있는 사회과학은 그 긴장감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지식의 두가지 전통 혹은 문화에 대해서 먼저 지적할 수 있을 텐데, 이것은 사회과학이 지니는 그 묘한 긴장감이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잘 설명해 줄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바로, 개별서술적 지식과 법칙확립적 지식 사이의 대립이다. 사회과학은 그 양자 사이에서 묘한 긴장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은 개별서술적 지식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었고, 그것은 형이상학이나 정치철학 같은 것이었다. 반면 법칙확립적 지식은 말할 것도 없이 자연과학에 대한 것이었고, 그것들은 이를테면 물리학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사회과학은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는가. 베버는 이를 두고 사회학은 대상을 이해하는 학문이고 자연과학은 대상을 설명하는 학문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반면에 뒤르켐은 사회적 현상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하면서 사회학이 추구하는 그 대상에 대한 실재론적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맑스는 경제적 토대를 기본으로 하여, 사회의 많은 현상들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싶어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심지어 역사가 가지고 있는 법칙에 대하여 탐구하였다. 이것들이 이른바 사회학의 삼위일체라고 일컬어지는 고전사회학자들이 사회(과)학을 다루는 방법들이었다.
모든 과학에는 그 과학이 독립적으로 다루고 있는 그 연구의 대상과, 또 그 방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생각을 누가 처음 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아마 과학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이견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좌우간 그렇다면, 사회과학의 그 대상은 무엇인가. 이는 분명히 사회적 현상 내지는 사회라고 대답하는 것이 원만할 것이다. 자연과학은 당연히 자연을 다루고, 사회과학은 사회를 다룬다. 그리고 이 말이 참이려면 응당, 사회는 실재한 것이어야 한다. 사회는 단지 개인의 합이 아닌 것이다.
나는 심리학 일반에 대하여 가진 지식이 전무하지만, 심리학은 바로 그런 사회를 온전히 다루는 지식체계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심리학이 생물학과 가지는 그 친화성은 바로 그런 사회과학으로서 반대되는 그 이질성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심리학이 인간 뇌를 연구하는 학문이 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사회과학의 속성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