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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들도 있었고, 여러 가지 생각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정리해보고자 항상 마음먹었지만, 좀처럼 그 일이 쉬운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일단 무작정 글을 쓰기로 하였다. 그것이 한결 생각의 진척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글은 바로 그러한 연유에서 쓰게 된 것이다.
대학원을 염두에 두게 된 사건들은 몇 가지 있었다. 그때를 살펴보고자, 20살 때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당시 나는 00대학교 사회과학부에 입학하게 되었다. 00대 사회과학부에는 경제학과 함께 사회학, 행정학, 정치학, 심리학까지 다섯 개의 전공이 있었다. 당시 나는 수학과 화폐를 증오하던 차라, 경제학은 죽어도 갈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심리학을 갈 생각이었다. 많은 심리학도들이 공감하리라고 생각하지만, 대개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많은 이들은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는 것처럼, 나도 그러하였다. 하지만 어렴풋하게 들은 바에 따르면, 심리학은 대학원을 가야하는 것이었고, 나는 그것이 엄청난 것처럼 느껴졌기에, 단번에 심리학을 공부하기를 포기하였다.
고심 끝에 결국 선택하게 된 것은 경제학이었다. 취업이 잘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경제학은 그런 의미였고, 나에게 대학원은 안중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어느 날 나는 마르크스를 만나고, 학회라는 것을 만나게 되었다. 경제학은 취업을 위한 학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학원을 고려하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생각하게 된 것은, 단지 진로를 고민하던 찰나에, ㄱㅂㅎ이 내게 문헌정보학 석사를 따서 사서를 해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고, 순간 혹 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접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 때문이었는지, 사회학 전공으로 대학원을 가볼까 하는 생각을 가끔씩 꿈꾸어 보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것은 기자나 해볼까, 교수나 해볼까, 하고 지금 아무런 생각 없이 던지는 말들과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계기가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ㅈㅈㅎ와 ㅇㄱㅅ교수님이 대화를 하는데, 교수님이 ㅈ군에게 내가 대학원에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그렇노라고 대답을 해버린 것이다. 나는 그 일을 수업이 끝난 후 전해 들었고 순간 충격을 받았다. 내가 그에게 대학원을 가겠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나도 경제학 대학원을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건은 하나 더 있었다. 이것은 순서상으로 더 이전에 있던 일인데, ㅈㅈㅎ교수님과 면담을 하는데, 교수님이 내게 유학을 권유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렇게 진지한 권유는 아니었다. 그것은 철학 전공이었다. 사회학에서도 사소한 제안은 있었다. ㅇㅎㅅ교수님이었는데, 이처럼, 나는 대학원을 염두 해두게 된 일부터 나는 내가 대학원에 갈만한 재목인지 주변의 제안들로부터 나를 한동안 측정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대신에 도움이 되었던 제안은 ㅅㅈㅇ의 권유였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녀가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수사는 제법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회사에서 바쁘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공부하면서 사는 것이 나의 적성에 맞을 것이라고 말해준 것이었다. 또 하나 도움이 되었던 조언은 ㄹㅎㅅ씨의 것이었다. 그는 경제학 석사학위를 따시고 유학을 준비 중에 계시는데, 그가 말하기를 이랬다. 학부를 다닐 때, 학회를 운영하면서 정말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다고 느껴지던 선배 한명과, 동기 한명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공부를 계속하게 된 사람은 그 똑똑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다고 말이다. 이 말은 항상 자신감 부족을 겪는 나에게는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사실 지금까지 이야기들은 이미 언젠가 반복했던 이야기들이다. 사실 굳이 또 쓸 필요가 없었던 것들. 내가 진정으로 대학원을 고민하게 되자, 나는 왜 공부를 하려는가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가 없었다. 사실 최근의 나의 생활은 대학원준비도 뭐고 다 잠시 내려놓고, 그런 추상적인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던 시간들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제대로 수행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왜 사회과학인가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공부는 무엇일까, 이따위 답도 안 나오는 질문들을 반복하자, 사실 얼마 가지도 않아서, 나는 오래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언젠가 지금처럼 한글을 켜서는 딱 한 줄짜리 글을 쓰고서 저장해 놓은 문서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뒤져볼 수 있었다. 다행히도 그 문서는 지워지지 않고 내 컴퓨터에 남아 있었다. 2011년 6월 27일에 쓰인 글이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다. “내가 만약 공부를 계속하게 된다면, 그것은 순전히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내보이기 위해서 일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나는 돈을 위하여 공부를 해보려고 한 바 없다. 내게 재능이 있든 없든, 내가 대단한 존재이든 아니든, 적어도 내게 공부는 돈을 위함은 아니었다. 하루의 벌이를 위해 일할지라도 부귀를 탐한 바 없었다.
나는 꽃다지의 <내가 왜?>라는 곡을 좋아한다. 비록 학생운동에 있어서 내가 얼마나 자신을 헌신하지 ‘않았음’을 잘 알지만, 그래서 나는 활동가로 명명될 수 있는 존재가 전혀 아니지만, 그저 그렇고 그런 학회원으로서 자리를 보존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 곡을 듣노라면, 소외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다.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이 소외란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왜 공부를 하려는가에 대한 질문을 주는 것 같다. 그렇게 말하고 싶다.
사실 요즘에 와서 자주 생각하는 것이지만, 지식을 쌓는 일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솔직히 와서, 학부에서 학년이 일정수준 올라간 이후로, 줄곧 대학에 와서 배운 지식이라고는 정말 별 볼 일 없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으로 대학에서 알려주는 지식과는 별개로, 대학에 와서 그동안 혼자서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그동안 배운 지식이라는 것은 대단히 짧다. 또, 지식이 내가 지금 남들보다 많다고 한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나는 지금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는 저들보다 더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또, 지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손쉬운 것인가. 누구나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학력이나 학벌이 아니라, 지식이다.) 그래서 공부에 있어서 만큼은 나는 겸손해질 수 있을 뿐이다. 얼마 전 ㅇㅈㅎ씨가 내게 겸손하다며 칭찬을 해주었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학에 와서 그나마 배운 것이 있다면, 아직 졸업을 하기엔 1년이나 남긴 했지만, 졸업하고 어디에 가서든, 누군가와 무엇이든, 의미 있는 일을 새롭게 기획하고 수행해나가고 싶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점인지 모르겠다.
사실 공부 그 자체를 고민하게 된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대학원에 갈 것이냐의 문제와 더불어, 세부전공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거기에 대해서라면, 프로테스탄티즘으로부터 물려받은 나의 관념들을 언급하고는 하는데, 사실 대단히 추상적인 것들이라, 여기서 다루기에는 조잡한 것 같다. 어렴풋하게는 성장론이나, 발전론, 기술과 인적자본론 따위를 염두 해두고 있었는데, 사실 세부전공을 고르는 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게 현재의 솔직한 상황인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