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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1이라는 순수한 가상에 반하여
인간 시대가 과연 언제부터 역사를 기록 하였는가 궁금하다. 그것은 아마도 고대의 왕조부터를 시작으로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신화의 도구들로 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것은 흥미롭게도, ‘기술(description)'의 실천(praxis)과 점철되었다. 우리는 역사(history)가 ’그의-이야기(his-story)‘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역사는 어떤 의미를 담은 기술의 행위였던 것이다.
인간 경험의 방식이 언제부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오염되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 오염을 17세기와 18세기의 청교도 혁명과 아담 스미스로부터, 그리고 18세기와 19세기의 샤를 푸리에와 카를 마르크스로부터,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선형화된 시간이라는 것은 근대 인간에게 있어서 그들이 쌓아 올린 그 ‘위대한’ 업적을 위한 기본적인 전제였던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물신(fetish)’ - 바로 그들이 쌓아 올린 그 위대한 업적, 다시 말해서 부(富) - 의 신화를 위해 그들이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기술의 방법(method of description)'인 것이다.
그로부터 경제성장은 근대 인간사회의 가장 숭고한 신화로 예찬되어왔다. 선형의 시간 속에 경제의 성장, 인간의 진보 그리고 행복의 확대는 예찬을 마지않는 믿음인 것이다. 현대경제학에서 이 믿음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유되어 왔다. 행복의 문제는 가치의 문제에 대한 주관주의적 전유였으며, 상품의 생산과 제도의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경제성장과 또 그 발전에 대한 이론들이 발달하였다. 인간의 문제는 결국 더 많은 상품의 소비로 환원되었고, 이에 따라 자본과 노동, 그리고 기술의 투입을 통해, 총생산이 결정되었다. 질적 문제들은 대개 경제제도가 얼마나 사적 소유권을 보장하는지에 대한 문제로 인지되었다.
하지만 밀레니엄의 시대는 바야흐로 종말의 시대 - 종말의 시간은 동시에 재림의 시간이며, 구원의 시간이다. 우리는 이 성경적 신화를 이해하여야만 한다. - 이다. 선형의 시간이 오직 출발점과 도착점을 기준으로 생성된 시간관념이듯이, 마치 예정된 것처럼 파국의 시간은 도래하였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프란시스 후쿠야마에 의해 역사의 종말은 선언되었고, 1970년대 이윤율 하락에 대한 만회로서 신자유주의는 나타났으며, 금융이라는 가상경제와 지식경제는 이른바 ‘신경제(new economy)’라는 이름으로 경제와 경제학의 새로운 도약을 약속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성장의 이론에 대한 공부는 필연적으로 이 신화에 대한 공부가 될 것이다. 이 신화는 곧 물신주의(fetishism)이며, 우리는 신으로 하여금 소외되는 인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판이라는 무기는 이 성스러움에 대한 허구성과 외설성에 대한 폭로이며, 폭로된 세속적 세계에서 어떻게 인간이 소외되는지에 대한 비판이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경제성장의 이론을 공부하고자 함이다. 발터 벤야민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이것은 오염된 시간에 대한 비판이 될 것이다.
“마르크스는 혁명이 세계사의 기관차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쩌면 사정은 그와는 아주 다를지 모른다. 아마 혁명은 이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잡아당기는 비상 브레이크일 것이다.”*2
각주
*1 경제성장, 그리고 경제발전이라는 두 단어는 경제학적으로 다르게 정의되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통상 경제성장은 Economic Growth를 지칭하는 것이고, 경제발전은 Economic Development에 해당하는 것이다. 여기서 전자는 국민총생산, 즉 경제의 양적 확대에 한정하는 것이고, 후자는 경제의 양적 확대뿐만 아니라, 제도나 문화, 노동의 질 등 질적 부문에서의 확대를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성장이론과 경제발전이론은 어느 정도 각각의 분야에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 글에서는 경제성장과 경제발전의 차이에 대해서 굳이 구분하지 않기로 하자. 이에 따라 경제발전 보다 경제성장이라는 용법이 오늘날 조금 더 일상적인 표현이라고 간주하고 경제성장이라고 지칭하였다.
*2 발터 벤야민 저, 최성만 역,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폭력비판을 위하여, 초현실주의 외』, 도서출판 길, 2009, p. 358 인용.
참고문헌
김인철 저, 『경제발전론』, 박영사, 2013
강남훈 저, 「지식기반경제론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비판」, 『교육비평』 제6호 (2001.겨울)
강남훈 저, 「신경제의 가치론적 해석」, 『경제와사회』 제47권
발터 벤야민 저, 최성만 역,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폭력비판을 위하여, 초현실주의 외』, 도서출판 길, 2009
심재희 저, 「신고전학파 성장이론의 비판적 검토: 내생적 성장이론의 관점에서」, 『산업경제』 제18권 제5호 통권61호 (2005. 10)
윤소영 저, 『역사학 비판』, 공감, 2012
조르조 아감벤 저, 조효원 역, 『유아기와 역사』, 새물결, 2010
카를 마르크스 저, 강유원 역,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 『헤겔 법철학 비판』, 이론과 실천, 2011
Ronald G. Ehrenberg, Robert S. Smith 저, 한홍순, 김중렬 역, 『현대 노동경제학』, Pearson,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