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에, 모호한 대상을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무슨 무슨 '주의(主義)'라던가, 무슨 무슨 '성(性)'이라던가, 하는 단어들은 물론이고, 뜬구름처럼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것에 대해서는 무엇이든지 지양하고는 한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일종의 유령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그 유령과 싸우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아마도 브레히트의 격언처럼, '진리'는 구체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에게 유령이라고 함은 '공산주의라는 유령(the spectre of communism)' 하나로 충분하다. 아니, 어쩌면 그 유령마저도 죽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유령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실재만을 가지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