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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경제학이라고 하는 것은 진정 자본주의의 첨병이요 종교이다. 우리는 이 물신(fetish)로부터, 경제성장이라고 하는 지독한 믿음을 찾아볼 수가 있다. 경제는 언제나 성장하고, 세계는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믿음은 흥미롭게도 몇 번의 변이를 거치게 되는 것 같다. 고전경제학의 오래된 묵시록적 예언인 정상상태(stationary state)에서 존 스튜어트 밀이 지속상태(steady state)라는 구원의 예언을 재해석해낸 것은 그 첫 번째 변화였다.
그 두 번째 변화는 로버트 솔로우가 지속상태(steady state)를 신고전파적으로 도식화한 경제성장 모형에 대한 비판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시카고학파, 신자유주의 그룹에서 이루어진 인적자본론, 신경제에 대한 담론이다. 혁신과 창조는 경제성장을 약속하는 그들의 새로운 수사인데, 정작 이들은 무엇이 혁신인지, 또 무엇이 창조인지 아무런 내용도 말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가치가 있는 것이 (즉 돈이 되는 것이) 혁신이고, 창조이다, 라는 것뿐이다. 이것은 혁신과 창조에 대한 사후적 해석일 뿐이다.
이러한 현대경제학의 특징적인 면모는 궁극적으로 가치론의 부재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고전경제학이 가지던 얼마간의 과학성에 대한 명백한 퇴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의 시작은 이른바 한계혁명이라 일컬어지는 객관주의에서 주관주의로의 반정이다. 그 으뜸에 서는 것이 바로 레옹 왈라스의 일반균형인데, 일반균형에의 발명은 공교롭게도 근대과학이 전제하고 있는 뉘메레르의 문제를 회피해간다. 그리고 이 왈라시안적 수사는 그 이후에도 경제학에서 아주 굳건한 담화로서 전승된다.
그렇다면, 가치의 문제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는 이 문제를 진리의 문제, 혹은 신(god)의 문제라고 불러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오늘날 현대경제학에서 이 문제는 철저히 도외시 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경제학에서 사용되는 수사는 단지 경제가 성장할 것인지, 실업이 늘어날 것인지를 논하기 위해 이용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경제가 몇 %, 성장할 것인지, 실업이 몇 %, 늘어날 것인지에 대한 수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철저히 수량에 대한 문제이고, 질적 문제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리에의 문제라는 것, 시차의 문제라는 것,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라는 것은 현대경제학의 관심대상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것은 현상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에 대해 탐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과학은 다시 한 번, 신을 정초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것의 부재를 알리는 모든 것이 과학에 대한 혹은 앎에 대한(!) 속류적 견해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최근에 ㅂㅇㅁ형과 정신분석학에 대한 담화를 오고갔는데, 라캉이나 바디우, 혹은 알튀세르와 같은 구조주의 이론들이 얼마간 내게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들은 모두 진리에 대한 신경증적 편향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는데, 아니면 로잔느 학파에 대해서 아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