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내가 혹자에게 보낸 글의 본문에 해당하는 글이다.


나는 논쟁이나 대화에 있어서, 일정하게 굳어진 패턴이나 태도 같은 것들이 있다. 이는 지금의 지적? 모습을 갖추기 훨씬 이전인 아마도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어 공고하게 굳어진 것이다. 그때부터 이어진 것이 지금까지 지속되면서 공고해지고 더 구체화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철저히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것이지, 어떤 고찰이나 신념으로부터 전해진 것이 결코 아니다. 이 태도나 패턴을 편의상 방식? 이라고 지칭하겠다. (앞으로의 논의 상 다소 혼란스러운 용어법일 수는 있다.)


그 방식이 무어냐 하면, 최대한 상대방의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바에 대한 내용을 수용하거나, 수용하지는 않더라도 가정하는 방식으로 논쟁을 진행하는 것이다. 거칠게 묘사하자면 최대한 수세적인 위치에서 논쟁에 임하는 것이고, 다르게 말한다면 상대에 대한 발본적인 비판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지금의 모습에 이르러, 그러한 나의 방식이 마르크스의 방식과 유사점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 마르크스의 비판이라는 방법, 혹은 변증법과 같은 수사법 - 하지만 이는 대단히 사후적인 해석일 뿐, 나의 방식은 마르크스와 무관하게 형성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실제로 엄밀하게 마르크스와 비교한다면 아마도 기술적으로 많은 부분이 다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일상적으로, (항상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논쟁이나 대화에 있어서, 타자의 주장이 담고 있는 ‘내용’이 아니라. 타자의 언설이 가지고 있는 화법이나, 방법, 전제 등 따위의 것에 대한 투쟁을 임한다. 이는 일상적으로 형식이 내용을 결정하기도 한다는 사실, 때때로 내용은 양적 차이를 현시하지만, 방법(방식; 형식; 수사법 등)은 질적 차이를 담지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중요한 것은 방법이지, 내용이 아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이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발본적인 갈등의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따라서 나는 때때로 내용을 포기하고서라도 방법을 쟁취하고 싶다. 때때로 설득은 투쟁이며, 방법은 무기이다. 니체가 들었던 ‘망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