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와 씁쓸한 외로움에 못이겨 달달한 영화 한 편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우디 앨런의, 애니 홀. 당초 목적으로 했던 달달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왜 사람들이 우디 앨런을 그렇게도 좋아하는지 알겠다. 그의 영화를 처음봤는데, 다시 예전처럼 영화를 잔뜩 보고 싶어졌다. 영화란 것은 꽤나 좋은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문화주의자이기 보다,  구조주의자이거나, 경제주의자였고,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보다는, 경제위기니 정치경제학이니 하는 것에 익숙해져있었다. 예술이니 인문학이니 하는 것들은 그렇게 자연스레 멀어져갔고, 늘 공부하고 싶었지만, 한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 우디 앨런의 영화는, 내게 다시 그런 열망을 조금이나마 불을 지폈다.


사실, 예전에는 뭣도 모르고 잘 주절거렸지만, 언제부터인가 영화 같은 것을 보고서 글을 쓰려니, 영 낯설고 어색하다. 수 년전에, 대학 교양 강의에서 영화의 이해 라는 제목의 수업을 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 수업에서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소개하며, 영화배우가 관객을 응시하는, 그리고 영화와 영화 속의 영화가 경계가 허물어지는, 그런 기법들이 사용되는 것을 배운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러한 기법은 애니 홀에서도 사용되었다.


 우디 앨런의 애니 홀을 보면서, 윤성호 감독의 영화를 떠올리는 것은 나의 무지일까. 우디 앨런은 끊임 없이 영화적 경계들을 허물었는데, 그것은 영화 배우가 카메라를 보면서 관객에게 말을 걸거나, 혹은 영화 배우의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거나, 또는 주인공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거나, 과거의 모습을 현재의 배우들이 감상하거나 하는 식의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 내적으로는 주인공 앨비 싱어의 정신이상이 영화적으로 표현되는 것이었고, 영화 외적으로는 마치 앨비 싱어의 인생사, 그리고 연애사의 서사가 가로지르면서 풀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윤성호 감독과의 유사성은 바로 그러한 부분에서 포착된 것이었다. 윤성호 감독의 은하해방전선을 보면, 주인공의 연애사를 중심으로 때때로 환상과 기억, 현재 등이 가로지르면서 영화가 진행된다. 은하해방전선에서 매우 친절하게 설명되는 주제는 소통이었다. 그의 그러한 영화의 특색은 정형화된 로맨스 영화를 위트있게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하해방전선에서도 주인공인 영화감독 영재의 방에서 배창호 감독의 러브스토리 비디오 테이프가 등장하는데, 감독이 말하듯, 그의 오마주이다. 그의 단편영화 두근두근 배창호에서도, 한국의 로맨스 영화 거장인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좋은 날의 한 장면을 위트있게 재해석한다.


한편 윤성호 감독은 반복적으로 자신의 영화에서 주인공을 감독 자신과 동일시하는데, 우디 앨런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너무 나간 해석일까. 우디 앨런이 감독도 하고, 주인공 앨리 싱어의 역을 함꼐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앨런과 앨리 라는 두 이름이 비슷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감독의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영화에서 앨리 싱어는 한편으로 유아적이고 한편으로는 지적이며, 또 코미디언으로서 재치있고 유머러스한데, (그러면서 신경질적이고, 이기적이다) 그것은 감독 자신의 모습은 아닐까.


다시 영화로 돌아가보자. 영화에서 앨리 싱어는 지적이지만 신경질적이고 이기적인데, 클럽에서 자기와 닮은 사람을 만날까봐, 클럽에 가지 않는 다는  농담처럼, 자기와 닮은 여인들과 만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서 코미디언인 앨리 싱어가 유머로서 자기 이야기를 표현하듯, 영화감독 우디 앨런은 영화로서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그녀들은 배우이거나 문학 전공의 대학생이다. 하지만 앨리 싱어의 이기적이고 신경질적인 성격들 때문에 결국 이별을 하는데, 그녀들과 싸울때면 그는 이 문제는 지적 문제가 아니라 연인들의 성적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여인은 반면 육체적이다. 테니스를 하다가 처음 만났고, 사진은 찍지만 아무런 미학적 이론도 모르고 감각적으로 찍으며, 대학교육도 받지 못하고, 서점에 가면 어려운 책이 아니라, 고양이사진이 담긴 책을 본다. 하지만 결국 다시 연인들간의 성적 문제를 겪고 이별을 경험한다. 앨리는 반복적으로 후회하고,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평소에 싫어하던 일들을 하나씩 해보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제서야 그가 전해주는 농담은, 사랑은 원래 비이성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다시 한다는 것이다. 달걀이 필요하니까.)


물론 그는 이러한 사랑의 불가피성 만큼이나, 이별의 불가피성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별을 하고서 앨리 싱어는 지나가는 연인들에게 묻는다. 서로 그리도 뜨겁게 사랑하는 이유가 무어냐고. 그리고 연인들은 답한다. 아무 생각 없기 때문이라고. 이러한 상황이 하나의 위트이듯이,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사는 것을 대개 긍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앨리 싱어를 볼 때에,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은 가능한 조건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당연히 이별도 불가피하다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