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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어제 낮, 학교에서 쓴 몇자의 글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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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의존해야 하는데, 자립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떨쳐내고 일어나고 싶다. 무엇인가 필요하다. I need Something.
이 독백의 끝은 어디일까. 이 일기장을 끝내는 순간, 파괴되는 것은 '나'라면, 도래하는 것은 무엇일까. 베개, 장롱, 일기장. 내가 이십육년을 간직해 온 것들.
학창시절, 나는 내내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라는 시를 읊조렸다.
사실 나는 안다. 내가 그토록 애착하던 것은 타자, 미래, 성차, 그것이 아니라, 자아, 현재, 동일성, 그것이었다. '내방 시계는 고장났다' 따라서 나는 여전히 그 시간 그 공간 안에 고정되어 있다. 부단히 변해 온 나지만, 그 동일성 만큼은 포기하지 않았고, 때문에 나는 존재할 수 있었다.
때때로 자기 세계가 없는 사람을 동경했다. 그러면, 삶이 좀 더 수월해 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감히 입에 담는 나는, 틀림 없이 한국의 어느 평범한 개신교도의 자녀다. 내 이런 오만한 생각이 나는 선민의식에 다름 아님을 인지한다. 나는 이스라엘 인이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저주스러운 민족.
때때로 세계와 나는 무관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이 세계에 부유하는 '검은 비닐봉지'이고, 관념이고, 아무런 뿌리도 가지지 않는다.
이십육년 동안, 나의 아비를 보아왔다. 성실한 가장, 지친 가장, 삐뚤어진 가장. 어쩌면 그것은 예수였다. 서울의 예수, 어느 변두리의 예수. 그리고 그것이 내게 준 것은 단 하나의 강박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의 환영 같은 것이었는데, 거울에 비친 것인양 거꾸로 된 것이었다. 내가 육신을 가진 그처럼 되지 못했기에, 나는 이 세계를 부유한다. 아마 세계는 진실로 실재할 것이고, (마치 진리가 실재하듯이), 그것은 혁명 없이 마주할 수 없을 것이다.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다. 이 일기장.
베개, 장롱, 일기장. 이 세 단어가 지금의 나를 바로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