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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수필을 연상케 하는 사회학은 면밀한 경험적 검토를 요구하는 사회학, 혹은 여타의 과학과는 달리 '조작적 정의'와 같은 <명사>가 중요시 여겨지기 보다, 어떤 상황이나 상태나, 형상을 묘사하는 <형용사>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ex. 가장 대표적인 사회학자는 아마 지그문트 바우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를 보라, 그에게 중요한 개념은, "유동적인" 근대이고, "방황하는" 개인들이고, "쓰레기가 되는" 삶이다. "유동적인" 하나만 포착해도, 그는 "유동적인" 근대를 말하고, "유동적인" 사랑을 말하고, "유동적인" 공포를 말한다.)
(ex2. <사회갈등과 통합>을 강의하시는 정수남 선생님도 이처럼 유사한 화법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때로는 재미있지만, 때로는 불편하다. 왜냐하면 그의 수사에서 형용사가 중요한 만큼, 명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 노트 필기한 것을 참조하여 말하자면, 그는 말한다. 갈등포착의 "키워드",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차원" -- 키워드라는 단어 대신에, 단서, 인식론, 방법, 등의 아무 말이나 넣어도 되고, 차원이라는 단어 대신에, 조건, 수단, 등 역시 적당히 넣으면 된다. 그는 자주 그런 수사를 사용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경제에서의 <내밀한> 개인의 욕망이고, 신/자유주의 경제의 보충물로서의 <사회적인> 것이고(the socials), 민주주의 공동체(또는 종교)를 유지시키는 <신성한> 가치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는 형용사의 사회학이요, 존재론인데, 한가지 일화가 생각난다. 경제과 모 강사님과 술을 마시면서 그분께 들었던 내용인데, 사회학 공부하는 분께 사회학 용어(무슨 용어인지 기억이 안난다. 유행하는 말이었다.) 의 뜻이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정확하게 정의를 내려주는 사람은 없었다는 말이다. 나는 이것이 참 낯설다.
(반면에 경제학은 경쟁이냐 경합이냐, 이자냐 이윤이냐, 화폐냐 신용이냐,의 명사적 구분이 중요할 뿐, 형용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정수남 선생님의 또한가지 특징은 경험에서 이론이 추출되는 것이 아니라, 이론에서 사회(경험)이 구성된다고 고집스레 말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