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이지만, 몇자 적기로 했다. 사실 페이스북에 끄적거린 내용에 대해서 쓰는 것이다. 나는 내가 활동하는 학회에서 가지는 불만 중에 하나는, 지속적인 연성화 혹은 비전문화이다. 하지만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는 이유는, 첫째로 게으르기 때문이며, 둘째로 그러한 방식을 취하게 되는 논리에 일정도 공감을 하기도 하며, 내가 가진 방법에 대해서 일정정도 회의를 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실 신입회원용 세미나 텍스트가 지속적으로 점점 쉬워지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사실 학회운영에 대한 질문이라면,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독서방법에 대한 질문이라면, 나는 이건 문제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다음은 세미나 문제라기보다는 독서 일반에 대한 문제에서 쓰는 것이다.


2차서적은 분명히 유용한 방법 중에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항상 그런것은 아닐지라도 A라는 텍스트가 어렵기 때문에 A에 대한 B라는 텍스트를 권했는데 A도 B도 어렵게 느껴진다면 더 쉬운 C를 읽기보다는 어렵더라도 A를 읽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C를 선택하는 것을 우리는 "더 쉬운 책이 갖는 함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표현은 뒤메닐-레비의 <현대 마르크스경제학>에서 역자인 김덕민이 역자의 후기에서 사용한 표현인데, 사실 그가 나와 같은 생각에서 그런 표현을 썼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그저 그런 표현을 사용했을뿐 다른 말은 전혀 안했기 때문이다.


(김덕민이 역자 후기에서 사용한 맥락은 이럤다. 경제학원론 강의를 하다보면, 학생들에게 경제학이 어렵다면서 쉬운 책이 있느냐며 질문을 하면, 그는 그냥 원론책에 충실하라고 답변한다며, 그 이유는 '더 쉬운 책이 갖는 함정' 때문이라고 말했다.)


1) 사실 A, B 둘다 어렵다면 C를 읽는다할지라도 독자는 이미 A에 대한 이해자체가 결여되어있기 때문에 C도 어렵게 느껴지고 자연스레 더 쉬운 D, E를 찾다가, 어려우니 그만두게 될 것이다. (내가 철학을 포기한 것처럼...) 또는 E를 읽고서 그가 건진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2) 1번과 연결된 것이기도 한데, 만일 A나 B를 이해하는 일이 어렵다면, 그것은 그가 A분야에 대한 독서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때에 제대로 이해를 못하더라도, 혹은 오독을 하더라도 A를 읽는 것이 그 부족한 독서력을 훈련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20살 때, 그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베버를 읽었는데, 그 당시 이해한 것은 전무할지라도 유의미했다.


4) 또 무엇보다도, A가 아니라 다양하게 필터링된 B, C, D를 이해하는 것이 때로는 A를 직접 읽는 것보다 A를 이해하기에는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필터링된 B, C, D의 물리적 거리는 자연히 A와 멀어지게 되는 법이다.


5) 또한 어차피 A와 B가 무차별하게 어렵다면 누군가의 독해물인 B를 읽기보다 오독하더라도 A를 읽는 것이 더 나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6) 하지만 같은 책을 읽는데 이해도 안되고 도무지 진전도 없이 계속 붙잡고 있다면, 과감하게 때려치고 다른 관심분야의 책을 읽다가 나중에 다시 도전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모 철학교수님이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당시 철학을 공부하고 싶지만, 너무 어렵다며 어떻게 해야하냐는 나의 질문에 교수님은 이렇게 말하셨다. "답 없어. 그냥 읽어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