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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ㄱㄷㅅ이 연락이 없어서, 그냥 혼자 영화나 봤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어서, 다 기억도 안나고, 내가 잘 주절거릴지 모르겠지만, 생각나는대로 쓰자면, 이렇다.
1. 정신병동에 있는 환자들은 다들 어딘가, 신체부위가 하나씩 강조되며, 그리고 때로는 동물로 표상되며, 하여간 다들 어딘가 '비정상'적이다. 그리고 저마다 사회에서 어떤 정신적 상처 또는 외상들을 겪은 이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언컨대, 자본주의의 증상들인데, 마치 70년대 여공들을 연상케하는 곳에서, 또는 모두가 기계가 된 공장을 연상케 하는 곳에서 임수정이 미쳐 쓰러지게 된 것을 보면 그건 단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임수정은 그 기계같은 공장에서 유일하게 남들과 똑같지 않은 존재다. 임수정은 자신이 사이보그라고 믿지만, 마치 자신만이 유일하게 사이보그가 아닌 것 같이, 말이다. 신체부위나 동물로 정신병동의 환자들이 표상하는건, 아마도 그들이 자본주의라는 커다란 기계에서 어떤 부속품으로 생활했고, 또 그 기능이 고장났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2. 임수정의 틀니는 할머니와 자신을 연결시켜주는 도구이지만, 형광등(과 같은 기계들)과 자신을 연결시켜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는 틀니를 통해서만, 형광등과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틀니를 끼고서야, 자신만의 세계에 머물 수 있다. 그리고 이 자신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에 대한 간극은 영화가 끝날때까지 결단코 사라지지 않는데, 때문에 영화는 너는 사이보그가 아니야, 라기 보다는 사이보그이지만 괜찮아. 하고 다독거리고 있다. 영화는 기계의 부속품처럼 생활하는 무기력한 개인에게, 당장에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하자고 말하기 보다는, "그냥,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을 내자(그리고 살자)"라는 (다소 역설적이지만) 정신병동의 '행동강령'을 말해준다. 비에게 정신병동 환자가 말해준 이 말은 아마도 오랜 시간동안 정신병 환자로 통제되고 관리되는, 선배 환자의 진솔한 조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비가 임수정에게 말해준다. 이 말은 아마도, 병리적인 사회에서 생활하는 개인들에게 보내는 지침이다.
3. 영화의 처음, 한 거짓말을 하는 환자가 임수정에게, 10년 전에, 병동에서 사라진 환자가 있는데, 그가 왜 사라졌냐면, 시계 소리를 계속 듣는데, 중간에 시계가 가끔 딸꾹질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죽어서)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의사는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알려주지만, 이건 사실 매우 상징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시계(라는 자본주의 체계)가 "정상적"으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끔 딸꾹질을 하며, 균열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시계가 딸꾹질을 할 때, 개인들은 병리적인 사회에서 탈출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희망을 버리고, 힘을 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4. 내 생각에, 비는 입원할 정도는 아니지만, 교도소에서 썪기 싫어서, 일부러 미친척을 하고 입원한 환자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택시에서 내리자 병동이었고, 다시 택시를 잡으려고 하다가, 다시 미친척을 하고 스스로 병동에 들어온다. 떄문에 그는 여러 환자들에게 이래저래 남몰래 도움을 주고 생활하고 있는데, 그것이 그가 정말로 미쳐서 그런건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런 것인지는 나타나지 않지만, 흥미롭게도 그는 교도소에서 반사회적 성격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은 사람인데, 남을 돕는다는 것이다.
4-1. 그가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사실 중요한건, 병동에서 모종의 변화를 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비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 변화는 "도둑질"로부터 발생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등가교환은 철의 법칙이다. 그것이 윤리적이며, 선하고 보편타당한 법칙이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를 보진 않았지만) 마치 조커처럼 공산주의자는 도둑질을 하는 사람이다. (브레히트의 희곡에 빗댈 수도 있겠다.) -- 공산주의를 운운한 건 오버라는건 잘 아는데, 어쩄든 강조하고 싶은 것은, 등가교환을 통해 변화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등가교환에 반anti하는 일을 통해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특히 비의 도둑질의 경우, 단순히 뺏는다기 보다는, 탁구를 훔치는대신에, 엉덩이가 가렵고, 양말을 훔치는 대신에 목소리를 얻는 식으로, 또는 동정심을 뺏는대신에, 사실상의 "호혜의 경제"가 작동하기도 하는데, 이건 매번 그런건 아닌듯하다.)
4-2. 그리고 어쩄거나, 이 도둑질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우발성'이라고 생각한다. 병동의 사화는 화이트맨(의사들)과 환자들이 매우 이분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인데, 이 사회는 임수정이 밥먹고 안먹고를 대단히 중요시 여기면서, 의사들의 말은 믿지 않는 사회로, 나름의 독자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데, 변화는 의사가 아니라 이 공동체 내부에서 <우발적>으로 나타난다.
4-3. 아마도 화이트맨들은 환자가 아니면서, 환자와 대립하고, 그러면서도 환자가 다치기를 원하지 않는 이들이다. 끼워 맞추자면, 생명관리의 사회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의사들은 사실 이들을 치료해주지 않는데, 왜냐하면 "시계소리에서 가끔 딸꾹소리가 난다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그냥 목숨만 구제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사이보그라는 사실을 고백해도, 아무렇지 않게, 자신도 사이보그라고 말하면서, 사실 먹는게 더 중요하다면서, 노동자를 다독거리는 착한 탈을 쓴 관리자들을 보는 것같다. 실제로 영화는 환자들이 규합해서 의사들에 대항하지만, 의사들은 그때마다 다그치거나, 아니면 설득해서 그들의 단결을 무력화시킨다. 또 임수정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꽤나 재미있다. 의사를 죽이기 위해서는 동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이다.
5. 임수정은 할머니가 엠블런스에 타서 병원에 강제로 보내질 때, 할머니가 그녀에게 외친 잘 들리지도 않고, 입모양만이 간신히 볼 수 있는 그 한마디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한다. 그 한마디는 "(너의) 삶의 목적은 $%%^&*(("인데, 이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항상 궁금해 한다. 영화에서 결코 그 한마디가 정확히 뭐였는지 알려주지는 않는데, 사실 답은 간단하다. 언젠가 페이스북에 비슷한 말을 적기도 했지만, 다시 말해보자. 기계에 대비되는 표현은 당연 인간이다. 그리고 기계는 인간의 도구이다. 도구는 영어로 object이고, 목적은 objection이다. 다시 말해서, 도구는 목적을 위해 태어난 존재다. 도구는 목적을 잃으면, 그 존재의미를 잃는다. 때문에 사이보그는 왜 태어났을지 항상 궁금해한다. 그런데 답은 간단하다. 인간의 목적은 원래 "없다" 인간은 살기위해 산다. 인간은 자아실현이나, 인류해방을 위해 살기보다는, 삶 그 자체가 바로 목적이고, 그런 존재만이 인간으로 명명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도구, 동물, 노예 등의 호칭을 받는다. 인간은 살기 위해 산다.
6. 마지막의 그 생경한 장면이 인상적이다. 황량한 평지에, 비와 임수정이,,,,,,,,,,,,,,, 몇 분간 롱테이크로 장면이 연출되는데, 이는 아마도, "사이보그"와 가장 대비되는 장면일 것이다. 인간 혹은 동물의 가장 육체적인 장면이다. 나는 이 장면이 사이보그 사회에서 탈출한 모습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7. 그밖에
- 임수정 손발톱을 대단히 짧게 잘랐던데, 이는 그의 매우 히스테리한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 임수정은 라디오로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와 간절히 소통하고 싶어하고, 비는 가면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누가 개입하기를 회피하는 이다. 둘이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