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선거에 대해서, 못다한 말들을 조금 더 적어야 할 것 같다.

   먼저 이번 선거결과에서의 특이점을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호남에서 민주당이 이긴 것, 경상도에서 새누리당이 이긴 것은 특이점이 아니므로 넘어가기로 하고, 우선 새누리당의 압승이었다는 점, 그리고 민주당의 정권심판론과 보편적 복지론은 수도권에서만 통용되었다는 점, 사실 보편적 복지론은 수그러들었다. 통합진보당이 야권연대에 힘입어 약진하였다는 점, 그리고 진보신당이 망했다는 점, 정도가 되겠다. 사실 별로 특이점이랄 것은 없다.

   사실 늘 이야기되는 것들을 반복해야 할 것 같다. 낭만주의는 빠르게 도덕을 대체해 나가고 있는데, 대선과 관련하여 생각해볼만한 것은, 문재인과 노무현의 유령이 가지는 낭만주의적 도덕과 박원순이나 안철수가 가지는 낭만주의적 도덕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통합진보당이 선전하는 낭만주의적 도덕이라는 것은 이들과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는지에 대한 것이다. 단지 옛 유령과 새로운 유령 간의 차이일까, 그렇다면 그들을 구분하는 도덕률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실 보수진영에서 북한을 악마화하는 것과 야권에서 현정권을 악마화하는 것은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대단히 동질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인데, 어쨌거나, 특정대상을 악마화하는 일은 쉽다. 그러나 그 대상이 자기 나름의 합리적 사고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지금의 문제를 대단히 순진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의 반증일 뿐이다. 국민이 개새끼라거나, 20대가 개새끼라거나 하는 담론은 그 자체로 그저 유아적인 사고일 뿐이다. 경험주의는 어쩌면 기각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의 경험과 타자의 경험은 동일하지 않다.

    투표를 독려하거나 투표를 하는 사람이 마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투사'처럼 표상되는 일은 단순히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징후적 독해가 필요하다. 현 정권이 실제로 악마적 성격을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사람들이 혹은 20대가 투표하지 않는 이유는 반민주적 정권에 의해 탄압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저마다 일 때문에, 공부 때문에, 여가 때문에 이리저리 치여서 못하기 때문이다. 즉, 투표를 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투사'가 진정으로 맞닥들이고 있는 대상은 반민주 정권이 아니라, 자본인 것이다.

   (일, 공부, 여가 모두 자본에 의한 것이다. 여가의 경우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자본에 의해 '미혹'되는 경우가 있고, 일이나 공부 등 높은 (준)노동에 밀려, 우리 사회가 대단히 과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 있다.)

   개인적으로 '스펙'이라고 할만한 것은 별로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20대가 스펙쌓기에 매몰되어 경쟁하기 바쁜 것을 두고, 비난하는 것은 그저 어른들의 순진한 낭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스펙경쟁을 옹호한다. 살기 바쁜 시대에 저마다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을 두고 감히 누가 비난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공동체의 어떤 가치를 위해 개인의 어떤 것을 기꺼이 희생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하여 나는 반대한다. 어쩌면 내 말도 순진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지 그 비난이 단지 기성세대가 꿈꾸는 어떤 새로운 도전이라던가, 젊은이의 패기라던가 하는 것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응당 기각되어야 할 것이다.

   투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그가 개념이 없는 것도 아니고, 고작 투표를 하고 인증샷을 올린다고 그가 개념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얼마나 알량한 '개념'이라는 말인가. 민주시민이라는 것은 고작 그 투표인증을 통해 완성되는가. 혹자가 말하였듯이, 무섭게도 유권자의 대다수는 '진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고서, 투표에 임한다. 그리고 그 '진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20대는 알고 싶지도 않고, 그런 것을 알기에 20대는 충분히 바쁘며 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