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경제학과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마르크스에 대한 이론들을 공부하는 (혹은 그러고 싶어하는) 사람으로서, 주류경제학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양가적이다. 주류경제학에 난점이 많듯이, 맑스주의 경제학에서도 난점은 많다. 그렇다고 양비양시론적인 입장을 대변하고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되도록 모든 유령을 죽이고 싶다. 그것이 (주류) 경제학이라는 유령이든, 마르크스의 유령이든, 나는 그것을 죽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건데, 나는 주류경제학의 미시경제학이 단순히 유령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궁금한 것은, 거시적 기초의 미시경제학이 성립가능한 것이라면, 그것은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화폐가 존재하지 않는 일상의 교환관계에서, 거시적 기초라는 관점은 과연 얼마나 통용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이것이 맑스가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국제무역론이 아니라, 교환일반에 관한 이론이라고 비판하였던 것의 연장선에 있는 쟁점이라고 생각한다. 맑스의 거시이론이 작동가능한 이유는 주지하듯, 생산관계라는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특징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산관계에 입각한 거시적 기초의 이론을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미시적 기초 우위의, 특권화는 가능한 것인가. 이 쯤에서 비약하자면, 이에 대해서는, 브로델의 삼층결정 도식을 이용하면, 어느정도 의문은 풀릴 것 같기는 하다.

   지금까지의 생각들은, 특히 근래의 학습내용들에 영향을 받은 것 같기는 하다. 첫번째는 가족사회학 시간에 배운 가족사회학에서의 교환이론, 다른 하나는 국제무역론 시간에 줄기차게 배우는 국제무역에서의 교환이론, 그리고 논문공모와 경제사상사 발표를 위해 (논문공모와 발표 모두 진전도는 0%이다.) 참고자료로 읽었던 가치이론에 대한 논문들이랑 케임브리지 논쟁에 대한 글, 그리고 마지막으로 ㅂㅇㅁ형이랑 얼마 전에 술마시면서, 구조주의와 프로이트의 계통발생, 개체발생에 대한 내용, 미시적 기초와 거시적 기초에 대한 내용 정도의 이야기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